[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부동산 명의신탁을 부탁받은 사람(명의수탁자)이 부탁한 사람(명의신탁자)을 거치지 않고 매도인으로부터 바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이전(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받은 뒤 마음대로 처분해도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같은 사안에서 명의수탁자를 일관되게 횡령죄로 처벌한 대법원의 입장을 변경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부동산실명법 취지에 맞게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해야 한다는 강한 취지로 풀이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9일 명의신탁 받은 부동산 지분을 명의신탁자 허락 없이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린 혐의(횡령)로 기소된 안모(58)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또 이번 판결과 배치되는 종전의 판결들을 모두 폐기했다.
재판부는 명의수탁자가 타인 소유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인지, 형사처벌상 필요로 명의수탁자를 처벌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합당한지, 형사처벌이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는지 등 세부분을 중점적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은 무효’라고 규정한 ‘부동산실명법’상 무효이고,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도인이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며 “이 때의 명의신탁자는 신탁부동산의 소유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명의수탁자를 형사처벌 하는 것은 부동산실명법이 정한 금지규범에 위반한 명의신탁자를 형법적으로 보호해 부동산실명법이 금지·처벌하는 명의신탁관계를 오히려 유지·조장해 입법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며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인정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은 명의신탁자와 수탁자가 신탁약정을 맺고 수탁자가 매매계약 당사자가 돼 소유권을 이전받는 계약명의신탁과 유사한데도 계약명의신탁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만 처벌하는 것은 법적안정성을 해치고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안씨는 2004년 지인 3명과 돈을 모아 함께 충남 서산시 논 9000여㎡를 4억9000만원에 구입하면서 자신 명의로 등기했다. 이후 안씨는 지분이 있는 나머지 지인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이 논을 담보로 돈을 빌렸고,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징역 10월을, 2심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이에 안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