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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국정교과서의 라이프사이클
입력 : 2015-11-04 오전 11:55:07
‘피고는 1974년 태어나 독재를 미화하고, 정권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등 국민들에게 호도된 역사를 주입한 죄로 사형을 선고한다!’
 
2003년 검인정 제도가 도입되고 2011년 완전검정 체제로 전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군사독재의 유물, 국정교과서가 2017년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한다.
 
3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 방침을 고집한 가운데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예정보다 이틀 앞당겨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 쐐기를 박았다. 
 
황 총리는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고 규정한 뒤,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아야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역사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과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은 지금껏 논란이 됐고, 그 논리적 맹점 또한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법학자로서 확정고시와 관련해서만 언급하겠다.
 
교과서 국정화가 위헌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서 법적 근거와 기준 없이 국정화를 장관 고시로 백지위임한 것은 위헌성이 높다.
 
사실 이런 위헌성 문제를 사전에 제거하고자 여야 합의로 발의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퇴진으로 마무리된 것이 국회법 개정안이다. 그래서 확정고시 발표와 함께 위헌성 문제가 대두됐을 때 지난 6월의 상황이 다시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당시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 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확정고시가 발표됐어도 지금과 같이 국회가 마비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는 시간을 두고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위헌성과 위법성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처음 언급한 것은 2013년 6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2년 반 이상의 시간을 거쳐 확정고시가 발표된 것이 11월3일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반대여론이 다소 높았음에도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필연적인 것이 된다. 물론 현 상황을 포함해 모든 과정을 검토하고 거부권을 행사했는지에 대해서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결과로만 본다면 우리는 정말 대단한, 앞을 내다보는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다.
 
현재 야당의 움직임을 봤을 때 확정고시의 위헌성은 교과서 국정화의 위헌 여부와 함께 헌법재판소에서 다투어진다. 합헌으로 판단되든, 위헌 판단이 늦어지든 국정교과서는 2017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종지부를 찍는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역사를 다루겠다는 것은 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하겠다는 의심을 받게 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고 언급한 것처럼 5년 또는 10년의 시한부 생명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가 힘들게 새로운 생명을 얻어 화려하게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단명으로 초라하게 끝날 것인지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박 대통령이 밝힌 바와 같이 국민과 역사학자의 손에 달려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정신 없고,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직업소개소를 전전해야 하는 국민들이 교과서 국정화 문제까지 떠맡게 됐다. 힘 없는 국민들만 더 바쁘게 됐다.

이상동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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