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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며 굴리는 국민돈 500조, 외압에 좌지우지
전직 관계자 "장관·국회의원들 청탁 비일비재…운용본부는 중요 결정에서 배제"
입력 : 2015-09-16 오전 7:00:00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의사결정 체계. 사진/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이 올 6월 기준으로 496조원의 기금을 조성하며 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됐다. 외형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내로라하는 규모로 커졌지만, 내실인 기금운용은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매년 투자수익률은 낮아지는데 이를 해결할 마땅한 대안은 안 보이고, 국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의결권 행사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국민연금 전·현직 관계자들과 시장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5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굴리면서도 정작 기금운용에 대한 실질적 권한이 없고,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보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공단은 돈을 쌓는 곳간일 뿐, 운영의 주체는 다른 곳에 있다는 뜻으로, 독립성 부재를 질타했다.
 
이는 복잡한 기금운용 체계에서 비롯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기금운용 지침과 기금운용 계획·사용 등은 모두 기금운용위원회라는 의사결정기구를 거쳐 결정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정부·민간 측 위원 등 20명으로 구성된다. 공단 이사장은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지만, 정작 기금운용본부장은 배석자의 위치에 머문다.
 
또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다룰 안건은 복지부 차관이 주재하고 정부와 민간 측 위원 20명으로 이뤄진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에서 먼저 논의된다. 아울러 자산배분과 투자 등은 투자정책전문위원회에서, 의결권 행사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부터 자문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가 국민연금 기금의 장기운용과 투자계획 등을 주도하지 못한 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된 사항에 따라 투자하는 역할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직 국민연금 관계자는 "역대 기금운용본부장은 20년 이상 민간 투자업계에 종사한 베테랑들인데, 국민연금에 와서는 수익률만 보고받는 위치"라며 "급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정부가 정하는 틀 안에서만 투자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모르는 사람들은 기금운용본부장이 기금운용의 모든 것을 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전략적 자산운용과 투자에는 아무 힘도 없다"며 "군대로 치면 총괄 지휘권도 없이 공격 명령만 받고 나가 싸우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윗선에서 기금운용에 대한 외압이 개입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직 국민연금 관계자는 "복지부 장관과 국회의원으로부터 투자에 관한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며 "주요 기업 주주총회를 앞두고 어떤 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할 것 같다는 식으로 요구를 받은 일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MB정부에서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청와대에서 기금운용에 대해 계획을 발표하고 복지부와 기재부가 보도자료로 배포한 내용을 위원회 안건으로 다룬 일도 있었다"며 뒷북 처지를 한탄했다.
 
국민연금 투자수익률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된 과도한 위탁운용 비중 역시 증권업계가 위탁운용의 장점을 내세우며 로비를 한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액은 2014년 말 기준으로 95조8000억원으로, 이중 위탁운용 금액은 41조6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주식 투자의 절반(43.4%) 가까이가 위탁운용이다. 이는 해외 연기금들의 위탁운용 비중이 20% 내외인 것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보인 일관성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외압 의혹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투자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해 논란을 일으켰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SK와 SK C&C 간 합병에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자문을 거쳐 합병에 반대하기로 지침을 정했으나, 유독 삼성물산 건에 대해서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판단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지침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되 의결권 찬성 또는 반대를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에 자문을 구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드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자문을 얻지 않아도 되지만 그럴 경우에는 합당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삼성물산 건은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삼성물산에 유리하도록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청탁이 기금운용본부로 들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윗선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린 사안을 국민연금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삼성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그렇게 변경됐다.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최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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