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국내 최대의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영국의 테스코(TESCO)로부터 홈플러스를 사들였다. 인수가격은 무려 7조2000억원. 시장에서는 론스타를 잇는 또 다른 대형 먹튀 사건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는 이마트에 이은 국내 2위의 대형마트로, 전국에 140여개 대형마트와 370여개 슈퍼마켓, 330여개 편의점을 보유하고 있다. 직·간접 고용인원만 10만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8조6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테스코는 재정난이 심해지자 홈플러스 매각을 추진했다. 문제는 매각 방침을 제외하고는 고용 승계 등 그 어떤 입장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또 시장의 평가를 훨씬 상회하는 7조원대 매각가를 고집한 탓에 예비입찰에 참여한 곳들 모두 사모펀드로 채워졌다.
사모펀드는 투자수익 극대화에 목적이 있다. 재매각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투자나 고용보다는 단기 실적에 집착한다.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시장에서는 분할매각과 대형 구조조정 소문이 나돌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홈플러스 매각의 본질에 접근하고, 향후 발생할 문제점들을 미리 짚어보는 차원에서 '홈플러스를 투기자본에 매각하지마라' 시민대책위원회 이정희 상황실장을 만났다. 시민대책위원회는 홈플러스 매각과정에서 생긴 사회적 갈등과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홈플러스 노동조합과 참여연대, 진보연대 등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연합군이다.
이정희 실장이 실무를 총괄하며, 현재 테스코와 홈플러스, MBK, 정부 등을 향해 ▲비밀 매각절차 공개 ▲고용안정과 협력업체·입점업체 상인들의 영업권 보장방안 마련 ▲소비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할 대책 제시 ▲먹튀 자본 근절을 위한 개선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희 '홈플러스를 투기자본에 매각하지마라' 시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
-홈플러스 매각과정을 간략히 되짚어 본다면.
▲매각이 속도를 낸 것은 테스코가 주관사를 선정하고 투자제안서를 인수후보 업체들에게 보낸 6월부터다. 후보군은 현대백화점과 농협, 롯데마트, 이마트 등 유통업체 위주로 선정됐다. 이후 사모펀드들도 관심을 보이면서 인수전에 참여했다. 문제는 농협이나 롯데마트, 이마트 등은 홈플러스를 인수할 경우 독과점 규제에 걸릴 수 있고, 현대백화점은 대형마트의 성장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며 주저했다. 당시 테스코가 내민 인수대금은 7조원 정도였는데, 시장에서는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테스코는 7조원 선을 버텼고 결국 유통업체들은 인수를 포기했다. 결국 MBK를 포함해 사모펀드 7곳만 남았다. 이들을 상대로 6월25일 예비입찰을 해서 인수 희망가격을 컷오프한 결과, 6조7000억원 이상을 쓴 5개 업체들로 추려졌다. 이후 7월에 본 입찰을 해서 MBK가 우선협상자가 됐다. 사실 MBK가 아니라 그 어떤 사모펀드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홈플러스를 인수해 어떻게 경영할 지 보다, 어떻게 수익모델을 만들어 비싸게 되팔 것이냐를 고민하게 된다.
-MBK가 홈플러스 인수에 사활을 걸면서, 테스코와 맺은 LBM(Lock Box Mechanism: 주식 양수도계약 이후 발생하는 모든 경영책임을 인수자가 지는 것) 방식의 계약이 문제가 되고 있다.
▲테스코는 지난 2일 MBK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일주일도 안 돼 최종계약을 맺었다. 실사도 없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계약이었다. 더구나 매각방식은 국내에 생소한 LBM 방식이다. 계약체결 시점부터 최종 경영권을 MBK가 가진다. MBK가 대금을 지급하기도 전에 테스코는 경영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 유출을 비롯해 홈플러스와 관련한 각종 사안에 대해 테스코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테스코는 먹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벗어남과 동시에 가장 빠르게 한국을 떠날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다. 매각과정에서도 여러 부도덕한 모습을 보였다. 철수 과정은 전적으로 비밀로 하고 노조와 어떤 교감도 없이 행동해 비밀매각 논란을 키웠다.
MBK도 잘못이 있다. 실사가 짧게 이뤄진 것은 MBK도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해서 경영을 잘해보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최대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자문도 구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전부 생략됐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를 추진하면서 국내 사모펀드라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다른 사모펀드는 외국계지만 자기들은 국내 펀드이므로 국내 기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홈플러스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과정을 보면 MBK의 이런 주장에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MBK는 7조2000억원이라는 매우 높은 가격을 써서 홈플러스를 샀고, 테스코에 매각차익만 크게 남겨주는 꼴이 됐다.
MBK는 왜 홈플러스에 목을 맬까. MBK는 분명 잘 나가는 국내 최대의 사모펀드지만 최근의 몇건은 투자수익이 좋지 않았다. SK루브리컨츠 매각 결렬과 C&M 매각 손실 등을 겪으며 사업성에 의구심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MBK는 투자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홈플러스가 상당한 영업규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할매각 등을 통해 재매각하면 자산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통기업으로서의 지속성, 노동자의 고용안정, 협력업체·입점업체와의 안정적 계약관계 유지 등의 노조 요구가 흐지부지됐다.
▲테스코는 한국을 떠났고 공식적인 관계도 끝났다. 하지만 론스타 사례처럼 먹튀 부분에 대해서는 사후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세금 쪽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런 부분에서 홈플러스 노조와 힘을 모을 것이다. 노조는 MBK에 대해서도 사모펀드 특성상 염려하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어찌 됐든 이제는 MBK와 새로운 의사관계, 건설적 관계를 맺는 게 필요하다.
-지난 10일 시민대책위원회는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이사를 배임·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같은 날 홈플러스 노조는 대표이사 해임을 촉구했다.
▲먹튀는 테스코지만 테스코와 접촉한 홈플러스 경영진 역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홈플러스 경영진은 3개월간 매각을 부정하고 노동조합을 매도한 장본인이다. 따라서 시민대책위원회가 도성환 대표이사를 고발하고 노조가 해임을 요구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홈플러스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상징적인 의미다.
그럼에도 '테스코는 먹튀가 아니다'는 도성환 대표의 주장은 현 경영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새 주인이 된 MBK에 잘 보이려는 추태다. 사실, MBK가 도성환 지키기에 나선다면 시민대책위원회나 노조 쪽에서도 방법이 없다. 하지만 현 경영진은 소비자는 물론 직원들에게도 신뢰를 잃었다. MBK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리라고 본다.
-MBK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홈플러스 노조는 대화를 요청했지만 MBK는 응하지 않았다. MBK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한다는 전망도 있다.
▲MBK는 돈만 대는 주주일 뿐이고 경영은 홈플러스 경영진이 하니까 노조는 경영진과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MBK가 하고 있다. 노조가 홈플러스의 새 주인이 된 MBK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MBK가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홈플러스 경영 정상화를 위한 어떤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구조조정 가능성은 반반으로 보지만, 실질적인 무게는 구조조정 쪽으로 쏠린다. MBK가 재매각을 용이하게 하려면 홈플러스를 분할매각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홈플러스의 전체 가치를 높이기보다, 재매각 협상에 유리하도록 홈플러스의 구조를 개편할 가능성이 크다.
-MBK의 홈플러스 인수로 국민연금공단도 도마에 올랐다. MBK가 홈플러스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낼 지 불투명함에도 국민연금이 MBK에 1조원 정도를 댔다. 국민연금이 외국계 기업의 먹튀를 도운 꼴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국민연금도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다변화하다 보면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 다만 공적인 자금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균형과 원칙이 필요하다. 특히 노동자 다수가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MBK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는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혈안이 돼 진행됐다.
-홈플러스 매각건에 대해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이 힘을 모으고 있다. 다른 시민단체나 국회 쪽에서는 어떻게 나서고 있나.
▲시민대책위원회는 국민연금에 MBK 투자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도 MBK 투자에 관련한 상황을 파악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목희 의원이 국민연금에 MBK 투자관련 내용을 질의했다.
시민대책위원회에는 참여연대와 진보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노동·비정규직 관련 단체 등이 참여했다. 홈플러스 노조와도 협력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2주에 한 번 꼴로 회의를 하고, 홈플러스 매각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홈플러스 매장 앞에서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집회를 연다.
사실 이번 매각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어쩔 수 없다고 보는 시민들도 있다. 그러나 테스코가 홈플러스 노동자들에게 어떤 언급도 없이 비밀스레 매각을 추진했다는 점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론스타 학습효과 덕에 사모펀드가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 나타날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들 염려하고 계신다.
-먹튀자본과 사모펀드 문제가 끊이질 않는다. 제도적 개선책이 있다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모펀드는 필요악이다. 인수방법도 다양해지면서 사모펀드가 등장할 여지가 많아졌다. 경영적인 필요에서라도 사모펀드가 개입할 수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라도, 어떻게 고용을 유지할 지에 대한 해답은 내놔야 한다. 부도 상황을 제외하고는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매각과 인수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먹튀자본과 사모펀드가 문제인 것은 기업의 알맹이는 쏙 빼먹고, 껍데기만 남기는 행태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심사기능 강화와 투기자본 규제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홈플러스 앞에서 ‘테스코, 최악의 먹튀 매각’을 비판하는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