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청춘같은 여름강가에서 벗어나 사붓사붓 걷는다. 낮은 구릉지가 많고 물이 맑아 낙토라고 부리던 땅 여주로의 여정이다. 여주는 남한강 물줄기가 그 땅의 남북을 가로지른다. 그쯤의 토박이들은 남한강을 내내 여강이라 부르는데, 여주군을 관통하는 남한강을 일컫는다. 오래된 옛 절터인 고달사지를 돌아보고, 굽이굽이 옛 이야기가 흐르는 여주 여강길을 따라 신륵사와 강으로 흐르는 황포돛배에도 올라본다. 드넓은 옛 절터에 사람이 드물어 쓸쓸하나, 산마루 아래 옛 터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이 보이는 절집에는 벌써 달과 그늘이 길어졌고, 멀리 새벽의 짙은 물안개 속에도 작은 바람들이 강물결를 차며 노닌다. 계절이 바뀌면 걸음을이 다소 느려질 것이다. 남한강 물길 따라 역사가 흐르는 고장, 여주의 길을 걷는다.
신라 경덕왕이 창건했다는 고달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텅 빈 들판에 빈 의자 하나 놓아둔다면, 계절이 바뀌는 때마다 누군가 오래도록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바람마저 멈춘 진공의 시간에서도 머무는 사람들마다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신륵사 강월헌 바위 자락에 앉은 늙은이에게 동자가 묻는다. 안개가 저리 짙은데, 어찌 강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큰 스님이 말했다. 눈을 감아야만 먼 길이 보이지 않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어찌 손에서 멀겠느냐. 안개 너머 멀리서 햇귀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사진=이강)
옛 절터에 남은 보물, 여주 고달사지
여주 고달사터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 절이 있던 광대한 절터다. 764년(경덕왕 23)에 창건된 사찰로 고달원이라고 불렸다. 고려 태종에서 광종 때까지 원종국사가 이 절에 머물며 절을 부흥시켰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절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기록에는 사방 30리가 절터였고 머물던 스님이 수백 명이었다고 전해지는데 면적은 4만 1035㎡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절터가 자리한 여주 북내면 상교리 마을은 고요한 동리다. 비교적 잘 정돈되어 보존되고 있는 절터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빈 터이나, 사면으로 병풍처럼 감싸안은 혜목산 산자락에 둘러앉은 품이 넉넉하고도 편안하다.
들머리에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나무 데크길을 따른다. 무한한 시공에 들어선 것처럼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무중력으로 유영하는 듯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다. 절터 중앙부에 이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불대좌인 고달사지 석불대좌가 자리하고 있다. 조금 더 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보물 6호인 원종대사 부도비(혜진탑비)의 귀부와 이수가 푸르른 창공을 받치고 늠름하게 제 자리값을 하고 있다. 육각의 거북 등껍질과 부릅뜬 눈과 날카로운 발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주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데, 사방의 허허로운 대지를 다 채울 만큼의 진기운이 느껴진다.
다시 언덕길을 따라 올라 숲길로 오르니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원종대사 팔각원당형의 부도가 나무 그늘아래 오롯하다. 잠시 둘러보고 원종대사 부도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국보 4호로 지정된 고달사지 부도를 만날 수 있다. 그 크기가 3.4m로 부도 중 그 크기가 손에 꼽힌다. 지붕에서 몸돌, 아래 받침까지 의 모두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인 부도다. 지대석의 연꽃 문양 위로 중대석 가운데 거북의 머리를 새기고 구름과 승천하는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해 놓았는데, 섬세한 문양에서 비범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동안 빈터의 시공을 가늠하다, 여주를 관통하며 흐르는 여강의 줄기를 따라 고찰 신륵사로 걸음을 옮긴다.
신륵사 극락보전(사진=이강)
남한강변의 정취가 한 눈에, 신륵사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강변에 자리한 사찰로 강변의 정취와 어울리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세종대왕릉이 여주로 천장해오면서 영릉의 원찰이 되어 많은 백성의 발길이 이어져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건물을 잃으면서 현재의 건물들은 현종 12년(1671년)에 다시 중창되었다.
신륵사는 고찰의 명성과 수도권에서 비교적 접근성이 좋아 평시에도 불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찾는 사찰이다. 특히 그리 크지 않은 사찰의 규모에 비해 많은 보물을 보유하고 있어 보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묘미가으뜸이다. 일주문을 지나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잠시 걸으면 이내 신륵사 경내에 도달한다. 조촐하면서도 아름다운 절집과 앞으로 흐르는 강의 풍광이 잘 어우러져 마음이 편안해진다. 화려한 문양의 극락전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또 보물 제180호로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사당에는 고려 말 불교계의 거목이었던 지공, 나옹, 무학 세 스님의 영정을 모셔져 있어, 꼭 불자가 아니어도 두 손을 모으게 한다. 명부전 등의 건물 역시 조형미가 돋보이고,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과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목은 이색이 석등 비문을 쓴 보물 제231호인 보제존자 석등 등의 유물들도 각자의 미를 뽐낸다.
신륵사 다층석탑(사진=이강)
그 중 관람객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다층석탑과 다층전탑이다.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다층석탑은 탑신의 세부조각이 매우 섬세하고도 아름답다. 경내를 다 들러본 이들의 걸음이 이르는 곳은 강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강월헌이다. 그 길목에 독특한 양식의 다층전탑이 우뚝하니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 벽돌을 쌓아 만든 형식의 전탑이다. 탑의 모양은 마치 커다란 굴뚝이나 등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오래 전 안개가 잦은 날이면 강으로 흐르는 작은 배들의 등대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자 강월헌에서 오르니, 발 아래로 여강이 흐른다. 새벽 물안개가 짙은 때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꿈만 같은 세상의 번뇌를 내려놓기에 그만인 자리이다. 신륵사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체험객들이 프로그램 중 새벽 명상을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멀리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황포돛배는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이 아름답다. 조선시대 4대 나루터 중 하나인 조포나루에서 운항하던 배를 재현해 냈다. 연양리 은모래유원지에서 출발, 상류의 신륵사 강월헌으로 거슬러 올랐다가 하류의 여주 군청까지 내려간 뒤 선수를 돌려 신륵사로 돌아오는 왕복형 코스를 운행한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