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이면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시장 규모가 107조원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적연금시장의 성장을 주도해 왔다. 그 동안 정부는 퇴직연금제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 변화를 모색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도입 초기에는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대기업 중심으로 가입을 독려했으며, 최근에는 영세 사업장의 가입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정책과 함께 투자운용 방식의 합리화, 수익률 제고 등 질적 성장을 위한 노력이 병행돼 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퇴직연금시장은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퇴직연금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개선돼야 할 과제를 살펴보자. 첫째, 낮은 가입률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상용근로자 대비 가입률은 50.6%로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고 사업장 기준으로는 16%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도입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소기업의 가입을 독려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내년부터 사업장 규모별로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고 30인 이하 영세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기 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에게는 충당금적립금이 비용 측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을 끌어 올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확정급여(DB)형 중심에서 확정기여(DC)형과 IRP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난 3월말 현재 DB형 비중은 69.2%이고 DC형과 IRP 비중은 각각 22.6%, 8.2%이다. 최근 위험자산 투자비중이 상향조정되고 연 300만원까지 추가 세액공제 혜택이 부여되면서 DC형과 IRP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와 같이 정부는 DC형과 IRP로 전환하도록 강력한 인센티브를 더 제시해야 한다.
DB형은 기존의 퇴직금과 유사한 개념이기 때문에 장기간 유지될 경우 회사의 비용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JAL이 파산하게 된 배경에도 DB형 퇴직연금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DC형과 IRP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투자결정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등 자산관리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는 개인이 자문업자의 도움을 받아 직접 관리하는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셋째, 자산운용에 있어 원리금보장성상품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퇴직연금은 장기상품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수익률 변동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저금리 시대에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올인하는 것도 문제이다.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92.1%이고 실적배당형 상품은 6.7%에 불과하다. 장기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리스크를 안고 투자상품의 편입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DB형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DB형의 97.9%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돼 있다. 안정적인 자산관리도 중요하지만 DB형이냐 DC형이냐에 상관없이 실적배당형 상품을 점진적으로 확대 편입시켜야 한다.
넷째, 퇴직급여 수급 시 일시금 수급자 비중이 96.9%라는 점이다. 연금수급자 비중이 적다는 것은 월 수급액이 적거나 사업목적의 목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충분한 자산형성이 되지 못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퇴이후에는 매월 정기적인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것이 생활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시금 수급보다 연금형태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자사 원리금보장상품의 편입은 일정비율 만큼 허용할 필요가 있다. 지난 7월부터 금융위는 원리금보장상품에 한해 자사 상품의 편입을 금지했는데, 오히려 역차별 규제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사 상품의 경쟁력이 더 좋은데 금융소비자에게 차선의 상품을 가입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카슈랑스 25%룰, 계열사 펀드 판매비중 50% 등과 같이 자사 상품판매 규제 중에 전면적으로 편입을 금지하는 규제는 없다. 자사 원리금상품의 편입 비중 때문에 퇴직연금시장에서 원리금보장성상품 비중이 높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제하고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제 퇴직연금 100조원 시대가 열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본격화로 사적연금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소비자에게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한 사적연금시장의 활성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세액공제 한도를 넘어서 적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적립할 수 있도록 현재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