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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혁명을 꿈꾸다 실패한, 문제적 인간 연산
입력 : 2015-07-13 오전 9:52:42
조선왕조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한 사람인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입니다. 초연한지 20년된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웰메이드' 역사극임을 과시 중인데요. 잘 짜여진 이야기의 힘이 새삼 놀랍습니다. 
 
폭군의 대명사이자 비운의 주인공인 연산은 어미 잃은 아들이자 제의를 이끄는 무당, 궁의 나이 든 대신들에 대항하는 혁명가로 그려집니다. 밤마다 꿈 속에서 어머니 폐비 윤씨를 만나며 악몽에 시달리는 연산은 녹수의 치마폭 속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던 중 연산은 폐비 윤씨의 원혼을 달래고자 제의를 지내려 하지만 대신들은 유교의 예를 앞세워 이를 막는데요. 끝끝내 연산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궁에서 제를 올립니다. 그런데 제의 중 녹수가 폐비 윤씨로 빙의하게 되고 연산에게 잔혹한 죽음에 대해 알려줍니다.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이후 잔인한 피의 복수가 펼쳐지는데요. 불합리한 명분으로 국사를 그르치는 대신들에 대항하는 연산은 극 초반에는 혁명가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다가 녹수의 힘을 빌어 마침내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으려 나서는 것인데요. 문제는 복수에 성공한 연산이 이후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명분 아래 귀를 닫으며 독재로 치닫는다는 점입니다.
 
연산과 대신들은 표면적으로는 명분 싸움, 속내로는 실리 싸움을 합니다. 여기서 실리란 바로 권세입니다. 이런 가운데 기울어진 기둥과 어지럽게 서 있는 대나무숲 등으로 둘러싸인, 쇠락할 대로 쇠락한 궁에서 사상누각 같이 위태하게 나라의 역사가 쓰여집니다. 누가 힘을 잡느냐에 따라 역사의 기록은 이리저리 뒤바뀌는 대목은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공신인 내시 처선이 연산에게 피의 복수를 그치라고 간곡하게 권고하지만 연산은 바른 말을 하는 처선마저 결국 처단하고 맙니다.
 
(사진=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이 제작한 이 작품은 백석광과 이자람의 캐스팅으로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들은 각각 연산, 녹수와 폐비윤씨(1인2역) 캐릭터로 분해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다소 단선적인 연기는 아쉬움을 자아냅니다. 반면, 주변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은 내공 있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탄탄히 잡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오영수, 이문수, 김학철 등 노장 배우들과 국립극단 단원들의 연기, 연희단 거리패 대표 배우 이승헌, 김미숙의 묵직한 연기가 특히 그렇습니다.
 
또 이 작품은 전통연희의 현대화를 끊임 없이 모색해온 이윤택 작가 겸 연출가의 공력이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연출가는 공연 중에는 물론이고 공연 시작 전과 중간 휴식 때에도 귀신으로 분한 배우들이 무대에 머물게 함으로써 인간 세상에 때때로 출몰하는 귀신을 재치있게 표현해내기도 했습니다. 춤과 연기 외에 소리 역시 귀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을 한 공간 안에 담아내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요. 녹수와 폐비윤씨 역 외에 음악감독으로도 참여한 이자람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절묘한 음악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을 순식간에 오가게 합니다.
 
-공연명: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날짜·장소: 7월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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