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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Go,Go)황포돛배 흐르는 영산강..나주로 마실가자
입력 : 2015-06-11 오전 6:00:00
나주 들녘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저기 굽이치는 영산강의 물줄기다. 영산강은 담양에서 광주, 나주, 영암을 지나 목포의 서해바다로 빠져 나가기까지 350리를 굽이치며 흐르는 물길이다. 이 영산강의 물길은 나주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거대한 S자 굴곡으로 강다운 면모를 갖추고 황홀한 자태를 드러낸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전주와 함께 남도 땅의 중심으로 전라도를 대표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큰 터가 바로 나주다. 영산강의 물줄기를 따라 2000년 시공의 역사를 더듬어 초록으로 빛나는 영산강의 물길과 들녘을 따라 걷는 길놀음이다.
 
언제나 생명을 깨우는 것은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강줄기의 웅장한 물소리다. 멀리 산등성이를 넘어선 새벽 물안개가 강을 타고 흐르다 아스라이 펼쳐진 들녘의 아침을 깨운다.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한 영산강 물길은 나주 영상테마파크 아래에서 S(에스)자 곡선의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남으로 남으로 흐른다. 호남평야의 젖줄 영산강 물줄기가 산과 들을 깨우고 비로소 나주에 이르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영산강 S자 물길(사진=이강)
 
영산강이 굽이치는 풍요의 땅, 나주
 
나주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예부터 영산강의 물줄기를 따라 터를 다지고 농사를 짓고 삶을 이어갔다. 황금빛 햇귀 들이치는 옥토에는 튼실한 알곡들이 넉넉하게 익어 갔고, 강물은 흘러 흘러 너른 땅을 적시어 메마른 삶을 넉넉하게 품어 안았다. 전라도라는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에서 비롯된 것 역시 이 땅이 그만큼 풍요로웠기 때문이었다.
 
한 세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주읍성 자리로 제일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나주읍성은 고려 때 축성된 석성이다. 조선 세조 때에 그 규모를 확장하고, 현종에 이르러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되면서 지금은 서문(西門) 주변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성벽은 일부 일반 가옥의 담장으로 흡수되었으며, 약 100여 미터의 흔적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이후 읍성의 남문인 남고문과 동문인 동점문이 복원되어 읍성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나주천이 흐르는 읍성 안으로 들자, 서기 983년 나주목 조성 당시의 유적들이 일부 남아 허허로이 길손을 맞이한다. 관아의 출입문이라 할 수 있는 정수루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객사인 금성관과 목사내아는 옛 번영의 흔적이 아픈 생채기로 남아 있다.
 
나주읍성 내 금성관(사진=이강)
 
금성관 앞의 나주 곰탕골목을 둘러보고, 옛 영산강변의 영화와 추억이 남아있는 옛 영산교 아래 홍어거리까지 걷는다. 영산강은 말 그대로 호남의 젖줄로 드넓은 호남의 너른 들에 생명에 기운을 더하는 큰 물길이었다. 이 물길을 따라 먼 바다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드고, 사람과 물산들이 영산포구에 모여들었다. 내륙 항구로 호남 최대의 포구였던 영산포구는 한창 번성기 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어물배, 객잔, 상인, 면포점, 미곡상, 어물전, 정육점 등이 꽉 들어찼을 정도로 해상 교통과 물류의 요충지였다. 또 나주평야에서 모아진 곡물들과 물산들이 모이는 호남 지역 최대의 물자교류지 역할을 담당했다. 영산강이라는 강 이름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영산포구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영산포구는 조선시대까지 번성을 누리다 일제강점기에 공출의 본거지로 수탈을 당했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과 함께 포구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영화도 사그라지고 만다.
 
황포돛배 흐르는 나주로 마실 가자
 
옛 영산포구는 이제 '홍어의 거리'가 됐다. 홍어거리는 옛 영산포구의 흔적과 비릿한 갯내음, 알싸한 홍어 특유의 향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거리에는 이제 홍어집 간판만을 내건 식당들이 즐비하다. 유난히 알록달록한 간판들의 색채와 문구는 어쩌면 지난 시간의 퇴색된 흔적들을 지우려는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홍어거리를 지나 영산교 왼편 제방길로 내려가니 강둑으로 국내 유일의 내륙 등대인 영산포 등대와 영산포 나루터가 보인다. 영산포 등대는 우리나라 유일의 내륙등대로 일제가 영산포구를 거점으로 식량을 공출하기 위해 1915년에 세웠으며 1989년까지 사용됐다. 높이 8.65m의 이 등대는 원래 등대 기능과 더불어 자주 넘쳐나는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역할을 감당케 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저 영산강을 말없이 바라보는 풍경의 하나가 됐다. 죽림동에 남아있는 옛 나주역사 안에 예전의 영산포의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나룻배와 황포돛배 흐르는 한 세기 전의 영산포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황포돛배 나루터(사진=이강)
 
옛 영산포구의 영화를 간직한 황포돛배를 찾아 나주영상테마파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30여 분을 달리니 강줄기 양편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에 힘찬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는 길목에 먼저 황포돛배나루를 찾아 나선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황포돛배를 직접 타볼 수 있다. 황포돛배는 누런 포를 돛에 달고,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하던 조선시대의 물자수송선이다. 옛 시절의 목선을 타고 영산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니 멀리 강을 굽어보는 석관정과 금강정의 모습이 보인다. 금강정은 영산강의 굽이치는 S자 물굽이를 제대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사진가들의 출사여행지 중 한 곳이다. 산 정상에 오르면 건너 편 절벽 위에 자리한 나주 영상테마파크의 아름다운 풍경도 만끽할 수 있는데, 그럴싸한 일몰을 찍으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영산강의 힘찬 기운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찬란하게 펼쳐지는 영산강의 S자 형태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나주영상테마파크(사진=이강)
 
황포돛배 체험을 마치고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한 나주 영상테마파크에 오른다. 인기 드라마 '주몽'의 세트장을 재단장한 곳으로 부여의 왕궁과 중국의 황궁, 신단 등을 재현해 놓았고, 다양한 공예체험과 염색체험, 도자기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신단에서는 굽이치며 흐르는 영산강도 조망할 수 있는데, 오후의 햇살과 푸른 하늘빛을 고스란히 담은 영산강이 보석처럼 빛나는 장관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잠시 노을 지는 영산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멀리 황포돛배가 일엽편주처럼 강으로 흐른다.
 
이강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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