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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현대사 풍자..이강백-김광보의 '여우인간'
입력 : 2015-03-10 오후 3:14:2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도로에 구멍이 생겨서 사람도 자동차도 빠지는데, 또 구멍이 생겨요.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지요. 지난 해에는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싱크홀이 생긴 것 같은 현상을 보고 놀랐었잖아요. 지난 해 한 번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 번 반복됐던 사건이에요. 다들 무엇인가에 홀려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데... 그 좌절감은 과거만 반복하고 있고, 미래로 갈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10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3층 종합연습실에서 열린 서울시극단 연극 '여우인간' 제작발표회에서 이강백 극작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상하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며 작품집필 배경에 대한 운을 뗐다.
 
"다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는데, 계속 반복하는 걸 보니 다들 무엇엔가 홀려서 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이강백 작가의 설명이다.
 
그런데 결론이 다소 엉뚱하다. "그래서 무엇한테 홀렸는가 연구해봤더니 그게 여우였어요. 하하하하." 거장의 호쾌한 웃음소리에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흐르던 미묘한 긴장감이 '탁' 하고 단번에 풀어진다.
 
서울시극단의 정기공연으로 오는 27일부터 내달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여우인간'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에둘러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것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의 정치사회적 현상이다. 이 작가는 여우가 인간으로 둔갑하는 이야기, 여우한테 홀린 인간을 다룬 이야기 등 옛 이야기 속 변신 모티프를 차용해 글을 썼다.
 
여우사냥꾼이 놓은 덫 때문에 꼬리를 자르게 된 4마리의 월악산 여우들이 고속도로를 지나는 트럭을 얻어 타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오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일종의 풍자 우화극으로, '오늘'을 웃음과 놀이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연출은 '제51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김광보 연출가가 맡는다. 이강백과 김광보가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레고리극의 대가와 단순함의 미학으로 사랑 받는 연출가의 늦은 만남에 공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 역시 서로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모습이었다. 김광보 연출가는 "아주 어릴 때 선생님 전집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언제 이강백 선생님을 만나게 될까' 하며 20년 넘게 연출하며 기대했는데 서울시극단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중견연출가들과의 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만 김광보 연출가와의 만남을 기다린 건 이강백 극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김광보 연출가가 인생에서 최고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작품을 만들어내는 횟수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렇죠. 그래서 '이걸 맡아줄까, 갑자기 맡아달라고 하면 해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단숨에 이걸 하겠다고 해서 '아, 이 사람도 나처럼 뭔가 오래 기다려 왔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이 작가는 "자신이 쓴 작품인데도 직접 돈을 내고 티켓 사서 연극을 볼 생각"이라며 한껏 부푼 기대감을 표현했다. 
 
김광보의 미니멀한 스타일은 이번 무대에서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높이 약 15센티미터, 가로와 세로 7~8미터 정도 되는 단 하나가 이번 무대의 전부다. 그 안에 여러가지 문양들과 함께 세상을 의미하는 지도가 그려질 예정이다. 여우의 외양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단한 연극적 약속으로 대신한다.
 
김광보 연출가는 "무대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연출가의 관점과 맞물려 있다"며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놀이가 강조돼 있는 형식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소품과 소도구를 별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배우들의 힘으로 이끌어나간다는 이번 공연은 한 판의 놀이판에 가깝게 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연과 별개로 '여우인간' 대본의 경우 추후 해외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작품의 영역은 세종문화회관과 업무협약(MOU)를 맺은 한국문학번역원이 맡는다.
 
2013년에 선보인 공연 '나비잠'의 경우 이미 영어로 번역돼 미국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고, 같은 해 초연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봉선화'의 경우 미주 공연을 펼친 바 있다.
 
김혜련 서울시극단 예술총감독은 "자본 논리 속에 놀아나는 '여우인간'은 한국의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많다"면서 "'여우인간' 희곡을 뉴욕에서 선보일 예정인데 이는 21세기 한류콘텐츠로 수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그곳 사람들이 직접 번역에 나서 공연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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