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작가란 무엇인가> 파리 리뷰 지음 |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펴냄 | 22,000원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삶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고 방식과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이 알 법한 대가 중의 대가, 특히 개성 강한 예술가의 경우라면 궁금증은 더더욱 커진다. 범인의 세계에 속하는 우리 대부분은 마치 살리에리처럼, 천재의 근사한 아우라를 벗겨보고 싶은 충동을 인지상정처럼 느끼곤 한다.
이럴 때 인터뷰는 비밀을 캐낼 유용한 도구가 된다. 물론 인터뷰어의 능력에 따라 보물이 나올 수도 있고, 그냥 먼지만 일으키고 끝날 수도 있다. 책 <작가란 무엇인가>는 다행히 전자에 해당한다. 이미 믿음직스런 추천도 잇따른 바 있다. 유명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추천, 책 앞머리에 실린 소설가 김연수의 추천사는 책의 본 내용을 보기도 전부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은 타임지로부터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찬사를 받은 <파리 리뷰>의 인터뷰 글을 모태로 한다. 1953년 창간된 이 잡지는 그간 뭇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세기의 작가들’을 인터뷰했고, 출판사 ‘다른’은 국내 문예창작학과 대학생 대상의 설문을 통해 <파리 리뷰>에서 인터뷰한 250여 명의 소설가들 중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36인을 선정, 그 중 12명을 <작가란 무엇인가>로 엮어냈다. 이후 2, 3권이 차례로 출간될 예정이다.
1권에는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의 인터뷰가 실렸다. 노벨 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중의 소설가들만 모은 셈이다.
대작가를 인터뷰한 만큼 책 속에는 소설 기법과 글쓰기 방식에 대한 힌트가 즐비하다. 어떻게든 즉답을 피해가려는 소설가들을 상대로 진땀을 뺀 인터뷰어들에게 감사를. 장인들의 기술을 엿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장점은 다른 데 있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사람이 보이는’ 인터뷰집이라는 점이다. 작가 한 사람만 보이는 게 아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도 함께 보인다.
인터뷰어들은 공통적으로 도입부에서 소설가들의 인상 묘사에 집중한다. 첫 만남 때 작가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집 안의 가구들은 어떤 양식인지, 서재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습관적인 행동들을 하는지 마치 세밀화를 그리듯 펼쳐 보인다. 작가를 둘러싼 풍경은 어쩔 땐 직접 질문을 던져 얻어낸 답보다 인터뷰이에 대해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알코올 의존증에서 극복한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 실패담, 자신의 진짜 직업은 저널리스트라고 항상 생각해왔다는 마르케스의 엄격함, 서서 글을 쓰는 헤밍웨이의 괴팍함 등 독자들은 대작가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안내된다. 특히 헤밍웨이를 인터뷰한 글은 인터뷰 현장의 떨떠름한 분위기까지 그대로 전달하며 웃음보를 터뜨리게 한다. ‘지루하다, 훌륭하다, 정나미가 떨어진다, 상관 없으면 그만하시죠’ 등 다채로운 언어로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해 끊임 없이 평가절하하는 헤밍웨이의 말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인터뷰어가 측은해질 정도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른 아침에 글을 쓴다는 것, 예상보다 더 많이 퇴고한다는 것, 재정적인 안정과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 등이다. 결국 독서 후 남는 것은 삶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주고 받는 대화 속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다.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혹은 책에 소개된 소설가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적어도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솔깃해할 만한 책이다.
김나볏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