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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현대인의 비극 그린 '미디어 속 메디아'
2013SPAF 국내 초청작 <메디아 온 미디어>
입력 : 2013-10-13 오후 4:52:3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미디어를 통해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과 더불어 연극이라는 매체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작품 <메디아 온 미디어>가 2013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국내초청작으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랐다.
 
2011년 연극실험실 '일상지하'에서 초연한 <메디아 온 미디어>는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초연한 해에 계간지 '공연과 리뷰'에서 주관하는 PAF 연극연출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한국연극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7'에 선정된바 있다. 내년 6월,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연극제에 공식 초청돼 곧 해외 무대 데뷔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메디아 온 미디어>는 그리스 고전비극 <메디아>를 바탕으로 재구성됐지만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세계를 그린다. 영웅들의 세계관을 그리는 그리스 비극과 달리,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상에서 비극성을 찾은 까닭이다. <메디아 온 미디어> 속 인물들은 장엄하기는커녕 일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 연극은 주인공 메디아와 비슷한 어감의 단어 '미디어(media)'를 비극적 삶의 조건에 대한 상징으로 언급한다. 가벼운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아이디어가 공연의 시발점인 셈인데, 시사하는 바는 제법 묵직하다.
 
작품은 미디어에 비친 메디아와 대중이 그 메디아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며 인간 존재의 허약함과 공허함을 성찰하게 하고, 나아가 대중 미디어와 차별되는 '연극'이라는 매체에 대해 상기시킨다.
 
원작인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는 고향과 아버지를 버리고 모든 것을 헌신해 사랑을 쫒아왔지만 결국 배신당한 뒤 복수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인 여자인 메디아와 그 주변인들의 운명을 그린다. 그러나 <메디아 온 미디어>는 비극적 운명의 대명사와도 같은 이 메디아 이야기에 미디어라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그 결과 무대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미디어 속에 갇힌 메디아다. 메디아가 겪는 현실은 마치 '사랑과 전쟁' 같은 류의 통속적인 드라마처럼 비친다. 그리스 비극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메디아는 프레임 속에서 특유의 생명력을 잃고 전형성을 띈다.
 
무대는 아주 간단한 연극적 약속을 통해 이 미디어라는 프레임을 형상화하고, 미디어를 통해 전개되는 극의 내용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바닥에는 흰 사각형이 텅 빈 브라운관처럼 배치돼 있고, 형광등이 무대 조명을 대신한다.
 
이 무대 위로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심지어 배우마저 거칠게 들락거린다. 연극의 각 장면은 마치 TV 채널을 돌릴 때처럼 툭툭 끊긴다. 무대에는 배우들이 마이크, 테이블, 의자, 물총, 권총 등의 소품을 임기응변식으로 사용하는 모습, 등퇴장 장면, 의상을 교체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된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이 소격효과 때문에 관객은 무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객관적 거리 두기가 <메디아 온 미디어>와 원작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메디아 온 미디어>의 관객은 메디아의 비극에 몰입하는 대신 메디아를 바라보는 '나' 혹은 '우리'를 공연 내내 인식하게 된다.
 
각 장면의 내용은 아예 대놓고 미디어를 본격 언급한다. 기자회견과 신파조 멜로영화, 요가나 게임 중계, 애니매이션 더빙 현장, CSI같은 수사첩보물, 리얼토크쇼, 가요무대 등이 <메디아>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상황과 맞물려 마치 다양한 TV 프로그램처럼 관객에게 차례로 선을 보인다. 
 
배우들은 각 장면에 걸맞게 다양한 스타일의 연기와 화술을 구사한다. 특히 메디아 역을 맡은 김미옥은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간판 배우답게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그리스 고전비극 속 메디아와 미디어 세례를 받는 메디아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극의 화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그리스 비극 메디아 이야기와 별개로 무대를 통해 선정성과 오락성 짙은 TV프로그램의 출연자, 옐로저널리스트, 익명으로 악성댓글을 다는 네티즌 등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관극 경험은 미디어에 의해 소비재로 전락한 인간 존재, 미디어의 폭력성에 대한 무감각 상태 등 도처에 널린 현대인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인간존재와 연극에 대한 존재론적 묵상은 '즐거운 소리가 슬픔을 씻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극 중 유모의 대사와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로 마침내 방점을 찍는다. 작품은 새로운 연극성에 대한 발견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극성 자체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기에 충분한 수준까지 간다. 
  
원작 유리피데스, 재구성•연출 김현탁, 출연 김미옥, 신용진, 이진성, 최수빈, 홍기용, 신현진, 신율이, 김강희 등, 1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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