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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잔혹하고 아름다운 시 한 편 같은 무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
입력 : 2013-10-03 오후 3:35:44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순수성을 잃어버린 잔혹한 세계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무대에 펼쳐진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과도 같이 무대 위 잔혹함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말로 내기 힘든 충격이 공연 내내 시청각을 두루 자극하며 내밀하게, 깊게 파고든다.
 
지난 2일 현대 공연예술의 메카라 불리는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이 제작하고 엠마뉴엘 드마르씨-모타가 연출한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이 '2013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개막작으로 국내 무대를 밟았다. 지난해 파리에서 초연한 이후 아시아 최초 투어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소문대로 조명과 무대, 배우의 연기 등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밀도 있게 표현돼 관객을 사로잡았다.
 
(사진제공=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이 작품의 개성과 동시대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표현 방법의 섬세함이다.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는 로제 비트라크의 동명 희곡을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연출가 엠마뉴엘은 다다의 세계관과 초현실주의 특유의 코드를 그 자체로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어법으로 빚어냈다.
 
공연의 주인공은 아홉 살이지만 180센티미터까지 키가 자란 빅토르다. 천재적인 지능을 지녔지만 조로해버린 빅토르를 통해 원작은 가족의 모순, 종교의 무력함, 맹목적인 애국심을 고발한다.
 
9살짜리 빅토르와 이웃에 사는 6살짜리 에스테르는 어른들의 불륜과 위선을 마치 놀이처럼 흉내 낸다. 어른들은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 하나, 계속해서 복통에 시달리는 빅토르의 모습은 부르주아의 세계가 타락 상태에서 회복되기 어려울 것임을 암시한다.
 
원작의 이 같은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는 이 공연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반문명 예술운동인 다다에서 주로 사용했던 부조리나 장난기, 성적 이미지가 무대 위에 초현실주의적으로 형상화되며 원작의 의도를 대변한다.
 
눈 여겨 볼 지점은 이러한 다다•초현실주의 컨셉트가 구체화된 방식이다. 다양한 시청각적 자극이 세련되게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공연미학을 구현한다. 먼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것은 조명과 사운드다. 붉은 계열과 푸른 계열의 조명, 긴장감 어린 사운드는 부지불식 간에 전환되며 무대에 완벽하게 녹아 든다.
 
나뭇잎을 바닥에 모두 떨군 채 열매 맺지 못하고 거꾸로 매달린 나무, 그리고 삼면의 벽 등 무대 세트는 존재 자체로 이미 상징적이다. 이 나무와 벽은 공연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면서 무대 위 인물을 압박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인상적인 무대 위 시청각 장치에도 불구하고 공연에서 배우의 존재감은 무척이나 뚜렷하게 살아있다. 대형 컨테이너 3대 분량의 대형 세트가 무대에 들어왔지만 배우들은 흉내내기, 언어 놀이, 가면 놀이 등을 통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한다. 특히 배우의 음성과 화술은 마치 노래의 각 성부처럼 자신의 역할에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은 이처럼 배우와 무대, 빛, 소리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적극 활용해 다양한 시청각적 경험을 선사하며 마침내 잔혹하고 섬세한 시 한편을 완성해낸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하는데도 객석에서 쉽사리 박수가 나오지 않을 만큼 무대의 잔상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작 로제 비트라크, 연출 엠마뉴엘 드마르씨-모타, 제작 떼아트르 드 라 빌, 무대•조명 이브 꼴레, 음악 제퍼슨 렁베, 의상 꼬린 보들로, 출연 토마 뒤랑, 엘로디 부쉐, 조리스 카사노바, 안느 캄프, 발레리 데시우드, 위그 케시테르, 사라 카바스니코프, 필립 드마를, 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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