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에너지 절감 기조에 맞춰 금융권이 차량 2부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도 도입 자체는 빠르게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통제나 구성원 인식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입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말 중동 위기로 인한 국내 경제 불안과 에너지 수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부문 차량 2부제(홀짝제) 및 고강도 에너지 절약 조치를 강조하자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들은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절감 정책에 발맞춰 차량 2부제를 속속 도입했습니다. 일부 금융사는 사옥 조명 소등이나 실내 온도 관리 등 다양한 절감 조치도 함께 시행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금융권 전반이 적극적으로 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출근 시간대 주요 금융사 본점 일대를 보면 차량 출입이 별다른 제지 없이 이뤄지고 운행 제한 기준을 지키지 않은 차량도 쉽게 확인됩니다. 경비 인력이 상주하고 있음에도 차량 번호를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 제도 위반에 따른 별도의 제재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권고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구성원들의 인식 부족입니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차량 2부제 시행 여부나 적용 기준 자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제도가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준수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한 금융지주의 경우 출근 시간대 차량 출입 현황을 점검한 결과 절반이 넘는 차량이 2부제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차량 2부제가 홀수·짝수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부분 차량이 제도를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제도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운행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차량 2부제가 자율 시행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금융사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제도를 도입했지만, 민간 기업 특성상 강제적인 제재를 두기 어렵고 직원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질적인 페널티 없이 자율에만 맡겨진 구조에서는 제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현장 통제 방식 역시 한계가 뚜렷합니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차량 출입 관리는 경비 인력의 육안 확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출근 시간대처럼 차량이 몰리는 상황에서는 모든 차량의 번호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외부 방문 차량과 직원 차량이 혼재된 경우 구분도 쉽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제도 준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보여주기식 ESG에 대한 우려도 제기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친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정책 신뢰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차량 2부제처럼 구성원의 일상적인 참여가 필요한 제도일수록 형식적인 도입에 그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운행 제한을 넘어 대중교통 이용 장려, 유연근무 확대, 친환경 차량 인센티브 제공 등 다양한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제도는 쉽게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차량 2부제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정부 정책에 발맞춘 속도전식 도입을 넘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 직원이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ESG 경영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차량 2부제는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주차장 앞 차량 5부제를 설명하는 안내문의 모습.(사진=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