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진=뉴시스)
법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기록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의 반복되는 사망 사고에 대한 응답이었다. 필요한 법이었다. 그러나 시행 직후부터 혼선이 시작됐다.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불분명했고, 어디까지가 처벌 대상인지 해석이 엇갈렸다. 법은 통과됐지만 기준은 논의 중이었다.
노란봉투법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하청 노동자의 쟁의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입법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통과 전후로 끊이지 않았다. 누가 사용자인지, 어디까지가 쟁의 행위인지. 법이 답을 주기 전에 현장이 먼저 움직였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확대 법안에 대한 소상공인의 반발은 크다. 골목 상권을 지키기 위한 규제 논의는 오래됐지만 기준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법이 너무 빨리 만들어지는 문제만큼, 필요한 논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 반복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급한 문제일수록 충분한 검토는 뒤로 밀린다. 법은 통과되거나 지연되고, 세부 기준은 나중에 채워지거나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급한 불을 끄는 방식이 반복되면, 다음 불을 막을 준비는 늦어진다. 속도는 남고 책임은 흐려진다.
보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시행 과정에서 결함이 드러나고 고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보완'이 설계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후 수습이 반복될수록 법이 제시하는 기준 자체에 대한 신뢰는 흔들린다. 자주 바뀌는 기준은 기준이 아니다.
장면은 반복된다. 문제가 드러나고, 법이 만들어지고, 다시 고쳐진다. 틀린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아니면 문제에 익숙해지고 있는가.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