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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가격의 보이지 않는 손
입력 : 2026-03-13 오후 5:27:34
텅 빈 장바구니. (사진=뉴시스)
오전 9시, 서울의 한 편의점. 소비자가 집어 든 음료에는 지난달보다 올라간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설탕값이 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며칠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은 달랐습니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이 약 4년간 설탕 가격의 인상 폭과 시기를 사전에 공유했다는 것. 소비자가 납득해야 했던 '시장 가격'은 처음부터 시장이 만든 가격이 아니었습니다.
 
설탕만이 아닙니다. 공정위는 최근 전분당 담합 혐의로 4개 제조사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7년여 동안 서로 짜고 6조2000억원어치를 판매한 혐의입니다. 밀가루 업체 7곳, 교복 업체와 대리점 40여 곳도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란 사태 이후 일주일 만에 10% 넘게 뛴 휘발유값에는 담합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생필품 상당수가 담합 혐의의 범주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담합은 경쟁을 무력화합니다. 그 피해는 수치로 환산되기 전에 이미 장바구니 속에서 축적됩니다. 특히 생필품 담합은 소득이 낮을수록 더 무겁게 짓누릅니다. 식료품과 연료는 줄일 수 있는 소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담합은 반복됩니다. 걸렸을 때 치러야 할 비용보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현행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20%. EU는 30%, 미국은 최대 징역 10년입니다. 형사처벌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한국에서 과징금은 벌칙이 아니라 사업 비용으로 계산됩니다. 기업이 담합을 '리스크 관리'의 영역으로 다루는 한, 적발과 제재는 억지력이 아니라 요식 행위에 가깝습니다.
 
공정위가 이번에 과징금 하한선을 최대 20배 올리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했습니다. 그러나 과징금 조정만으로 담합 구조를 바꾸기에는 부족합니다. 핵심은 형사처벌의 실효성입니다. 현행 최대 징역 3년은 기소조차 드문 현실에서 선언에 가깝습니다. 담합을 조직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경영진이 실제로 구금되는 사례가 누적될 때, 비로소 계산이 달라집니다.
 
담합은 경제 질서를 훼손하는 범죄입니다. 기업이 '걸리면 내는 비용'으로 여기는 구조부터 바꿔야 합니다. 편의점 선반 위의 가격표가 진짜 시장이 결정한 숫자인지, 누군가의 합의가 만들어낸 숫자인지를 소비자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 비대칭을 바로잡는 것이 공정거래 정책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혜지 기자 zizi@etomato.com
이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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