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이재명정부의 새로운 약가제도가 공개됐습니다. 제네릭의약품의 약가를 인하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자세히 뜯어보죠.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한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보면 제네릭의 약가를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현재 53.55%에서 40%대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습니다. 2012년 이후 13년 만의 약가제도 개편안은 내년 하반기부터 적용될 예정입니다.
새로운 제네릭 약가제도에는 여러 조건이 붙습니다. 먼저 혁신형 제약 기업 중 매출액 대비 의약품 R&D 비율이 상위 30%에 해당하는 기업은 68%의 우대 약가를 적용받습니다. 이들을 제외한 하위 70% 기업에는 60%의 우대 약가가 붙습니다. 혁신형 제약 기업에 포함되지 않은 곳을 위한 기준도 마련됐습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2상 승인 실적 등 정부가 정한 요건을 갖추면 55%의 우대 약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기준 정부는 49개 기업을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묶었습니다. 대개 일정 수준의 매출을 유지하면서 자체 품목을 보유해 안정적인 실적을 내면서 연구개발 투자도 적잖이 하는 곳들입니다. 정부가 신약 임상 2상 실적을 약가 기준으로 삼은 건 중소사가 배제되지 않기 위한 조치인 셈입니다.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낮추려는 의도는 명확합니다. 전통적인 케미칼 의약품 분야에선 신약 개발 실적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탁개발생산(CDMO), 바이오시밀러 개발 등 굵직한 실적을 내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 중인 바이오의약품과는 상반된 양상입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을 보면 올해 1월 기준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 2만1962개 중 단독 성분으로 등재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11.3%)에 불과합니다. 전체 급여의약품 중 약 90%가 제네릭으로 채워진 겁니다.
한국의 제약산업이 제네릭 위주로 편성된 건 이유가 있습니다. 특허 기간이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성분을 그대로 만들어 시장에 출시해도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니 굳이 시간과 비용 소모가 심한 신약 개발에 도전할 필요가 없는 거죠.
신약 개발 동력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새로운 약가제도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산업계 전반의 의견이 우려 섞인 볼멘소리일 정도로 강도 높은 조치라는 사실입니다.
불평은 주로 중소사에서 나옵니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사들은 기술이전을 통해서라도 신약 개발 기간을 줄일 여력이 있는 반면 제네릭 매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사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할 처지니까요.
정책이라는 건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입니다. 당연히 반대 의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제네릭으로 먹고사는 중소사일지라도 산업계 안에서 살아가는 기업이니 이들의 불만도 잠재울 당근이 필요하긴 합니다.
제네릭보다 신약 개발을 유도하는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산업계 의견을 통합할 수 있는 대안이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AI)을 도입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경우 우대 약가를 일정 기간 보장할 수도 있습니다. AI 정부를 자처하는 이재명정부의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제약산업의 새로운 흐름인 AI 신약 개발을 장려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제약 기업이 만드는 의약품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약품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부작용보다 크면 약이 되고 부작용이 효능·효과를 앞서면 독이 됩니다. 신약 개발 독려를 통해 산업계 부흥을 노리는 제네릭 약가제도가 독이 되지 않으려면 채찍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