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김성은 기자]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정치권 블랙홀로 급부상했습니다. 국민의힘은 검찰의 항소 포기 이면에 이재명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며 공세를 펼치는 반면 민주당은 정쟁을 부추기지 말라며 충돌하고 있습니다. 항소 기준을 두고 다투기 시작한 여야는 7800억원대 추징금 환수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여부까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11일 주요 쟁점을 네 가지로 나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각각의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사진=뉴시스)
①7800억원대 추징금 환수
앞서 검찰은 대장동 사건 피고인들이 총 7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보고 전액 추징을 요구했습니다. 1심 판결에서는 뇌물액 473억3200만원만 추징했는데요.
정 장관은 지난 10일 정부 과천청사 출근길에서 가진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에서 7800억원대 추징금에 대해 "(항소 포기로) 범죄수익 몰수가 불가능해졌다는 건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입증만 제대로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민사로 추징금을 받아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윤용근 국민의힘 성남시 중원구 당협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기자회견에서 "특가법상 배임이 아닌 일반 형법 배임을 적용해 7886억원 중 473억원만 범죄수익으로 인정됐다"며 "이마저도 2심에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실체적 진실 입증은 형사재판에서 가능한데, 민사는 이 형사재판의 선고를 준용해 배상금액을 결정하므로 대장동 주민과 국고에 귀속돼야 할 7000억원을 받아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아직 추징금 환수의 길이 열려 있다는 입장입니다. 김지호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9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장동 사건의 핵심은 검찰의 항소 여부가 아니라 성남시·공사가 민사를 통해 시민의 재산을 얼마나 되찾아오느냐"라며 "법적으로는 손해배상청구 및 부당이득반환청구가 모두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에서 배임 범죄액을 확정하지 못함에 따라 민사에서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민사 재판에서 자금 동결이 어려운 만큼 추징금 환수 가능 여부도 미지수입니다.
②통상적 항소 기준
여야가 거세게 충돌하는 부분은 검찰의 항소 기준입니다. 대검찰청 예규에 따르면 중대범죄는 선고 형량이 구형량의 3분의 2 미만이면 항소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대장동 사건 1심 판결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선고 형량이 구형량에 미치지 못했는데요. 이렇다 보니 이번 항소 포기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항소 포기에 대한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등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항소 포기 결정을 내린 검찰 지휘부를 저격하고 나섰습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검찰의 항소 포기에 대해 "최악의 결정"이라며 "이 결정 자체가 또 다른 배임이고 직무유기이고 법치 대한 자해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은 검찰의 기계적 항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을 향해 "조작에 가까운 정치 기소를 해놓고 허술한 논리와 증거가 법정에서 철저하게 무너졌는데도 부끄러운지 모른다"며 "검찰이 기계적 항소권의 남용을 자제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번 대장동 사건에 대한 1심 판결 결과가 검찰의 항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구형량의 절반 미만으로 선고가 나올 경우 항소하는데, 대장동 사건의 모든 피고인은 검찰 구형량의 절반 이상으로 선고됐다는 것입니다.
정 장관도 "검찰의 구형보다 높은 형을 예외적으로 선고했고, 나머지 피고인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 선고했다"며 "일반적 사건은 구형의 절반 이상 선고되면 항소하지 않으니 그런 기준하에 (검찰은) 크게 문제없다고 봤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③수사지휘권 발동
대장동 항소 포기의 후폭풍에서 정치권의 파장이 큰 영역은 법무부 등 정부 차원의 개입 여부입니다. 정 장관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총 세 차례에 걸친 보고를 받은 바 있는데, 대검찰청이 '항소' 의견을 내자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했으며 지난 7일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법무부 의견을 참고했다고 밝힌 가운데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정 장관의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 이런 정도로 제가 의사 표현을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사실상의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해석입니다. 게다가 공식적 수사지휘권의 발동 없이 '사실상 지시'한 것 역시 위법 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법무부 앞 긴급 규탄대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항소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두 번 올라왔는데 '신중하게 판단하라'고 한 건 장관이 명백하게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장 대표는 검찰의 항소 자제 결정을 마치 정권의 외압이나 비호에 의한 정치적 거래인 양 단정하며 검찰의 독립적 사법 판단을 폄훼했다"면서 "극단적 비유까지 동원해 통상적·절차적 검토 과정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국민적 불신을 키우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고 반발했습니다.
④정진상·김용 뇌물죄
항소 포기의 여파는 대장동 일당의 1심 판결에도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1심 재판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적용됐던 뇌물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바 있습니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이익금 중 428억원을 유 전 본부장 측에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은 인정이 됐지만, 돈의 성격이 '배임의 범죄 수익을 배분한 것'이라고 규정해 뇌물죄 자체가 무죄로 선고된 겁니다.
그런데 검찰의 항소 포기로 사건이 종결되면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혐의 역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법조계의 판단이 나옵니다.
피고인에 대한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1심 무죄 선고된 혐의에 대한 판단을 변경할 수 없게 된 영향입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1심 항소 포기가 정진상·김용 사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25일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