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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아이히만의 나라
입력 : 2024-12-10 오후 4:39:15
지시에 따랐다, 당론에 따랐다, 명령에 따랐다. 자기 책임과 성찰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말들 뿐입니다. 하지만 지시에 따르지 않고 계엄군 되기를 거부한 채 국회 밖을 배회한 군인이 있었고, 당론을 거부하고 탄핵 투표권을 행사한 여당 의원이 있습니다.
 
지금의 이 사태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절대악을 상정하고 그 최상단만 잘라내면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린 이미 경험했습니다.
 
절대악을 상정하는 이유는, 자신의 책임은 지우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자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이해심을 발휘해주는 모습입니다. 언제나 있었습니다. 계엄군이나 친일파나 독재정권 혹은 그밖의 부역자에 대한 '너그러움'의 목소리 말입니다.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참작하는 것과 그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일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관용이 아닌 자기애입니다. 권한이 클수록 책임이 무겁지만, 반대라고 해서 책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개별 주체입니다. 민주시민으로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할 순간에 사고하고 성찰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부역자가 되고 맙니다.
 
파업하는 노조를 보며, 출근길에 장애인 이동권을 비롯한 예산안을 두고 투쟁하는 전국장애인연합회를 보며, 동덕여대 학생들을 비난하며 '남 일'이라고 생각하고 성찰하기를 거부하는 수동성을 먹이 삼아 폭력적인 사회가 자라납니다.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를 책임지기보다 시스템에 기대고, 책임을 소수에게 전가시키며 스스로는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사회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습니다.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는 세월호 1주기 당시 쓴 칼럼에서 스스로를 가해자로 승인하고 집단을 떠나가는 뒷모습에서 '인간'을 본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시하라 요시로라는 시인이 소련군의 포로가 돼 수용소 경험에 관해 쓴 ‘비관주의자의 용기’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했는데요.
 
"'인간'은 항상 가해자 속에서 생겨난다. 피해자 속에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를 최종적으로 가해자로 승인하는 장소는 인간이 스스로를 인간으로서, 하나의 위기로서 인식하기 시작하는 장소다."
 
스스로의 가해자성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가해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자신의 수동적인 태도는 한 발도 성찰하지 않고 변화하기를 거부한다면, 결코 가해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독일 나치 홀로코스트의 주요 실행자인 아이히만 역시 주체성을 포기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의 재판을 통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아이히만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이를 단순히 '명령에 따른 행위'로 여겼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즉, 그는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생각 없이 체제에 순응한 평범한 관료였다는 점에서 악이 어떻게 일상적이고 비인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신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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