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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9화)“교언영색 대신 충언에 귀 기울이라!”
설총의 화왕계…오늘날의 정치지도자도 경청해야할 교훈
입력 : 2023-07-31 오전 6:00:00
이번 글에서는 우리 공동체의 최초의 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강수에 이어서 설총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설총은 여러분들이 이전에 원효스님에 대해서 말씀 드릴 때, 들어본 인물이죠. 원효 스님께서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서 낳은 아들, 총명한 아들이 설총입니다.
 
설총 또한 《삼국사기》에 열전이 남아있습니다. 《삼국사기》 열전을 보면 설총은 어렸을 때 “유교의 아홉 경전을 우리말로 읽었다”[이방언독구경(以方言讀九經)]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에 우리말 번역본이 있었을 리 만무하니, 설총이 우리말 번역본을 읽었다는 얘기라기 보다는, 한문으로 된 유교의 아홉가지 경전을 읽으면서, 바로 우리말로 뜻을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경전에 해박했다 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총은 그 정도로 총명했는데요, 이름이 총명하다는 뜻에서 ‘총(聰)’입니다. 설총에게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우언(寓言) 자료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권오창 화백이 그린 설총 표준영정.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삼국사기의 열전 기록에 따르면 신문대왕께서 유월 달에 장마가 그쳤을 때 설총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경은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들을 알고 있을 터이니 나를 위해서 오늘 그것을 하나 풀어주지 않겠는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좋은 얘기를 들려달라는 얘기지요. 그랬더니 설총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 제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화왕계(花王戒)>라고 알려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화왕계>는 꽃의 왕인 모란과 모란에 대해서 유세를 하는 장미와 할미꽃이라는 세 꽃을 의인화하여 등장시켜서 교훈을 주려는 우언(寓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란이 이 땅에 처음에 왔을 때, 향기로운 정원에 심고 물총새 꼬리털로 보호해두었습니다. 모란이 꽃을 피우자, 모란이라는 꽃의 왕을 알현하기 위해서 경향 각지에서 꽃들이 다 몰려왔습니다. 
 
그 때 요염하게 생기고 빨갛고 이가 옥과 같은 예쁜 꽃이 아장아장 걸어서 모란을 알현했습니다. 알현한 뒤에 모란에게 뭐라고 얘기했냐며는, “첩은 눈밭과 같은 모래를 밟고, 거울과 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봄바람과 햇살에 먼지를 떨고 자라는 장미라고 하옵니다. 임금께서는 선한 덕을 사랑한다고 하니 임금의 향기로운 처소에 베개를 하나 더해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경주 보문동에 있는 고려시대에 ‘홍유후(弘儒侯)’로 추존된 설총의 무덤. 사진=필자
 
장미에 이어서 할미꽃을 의인화한 노인이 등장합니다. 노인은 거친 베옷을 입었고, 갈대로 띠를 두르고 무겁게 걸어와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임금께서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불리시고. 옷장에 갈무리를 못할 정도로 옷이 많다고 하더라도, 가끔 더러는 돌침으로 독을 빼야하고, 좋은 비단옷이 있다할지라도, 거친 옷들을 버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임금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모란 주변에 있던 꽃들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왔으니 누구를 택하고 누구를 버릴것인가?” 이렇게 얘기하자 모란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노인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어여쁜 사람은 얻기 어려우니, 이를 어쩐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얘기했습니다. “자고로 군주가 된 자들은 교언영색(巧言令色, 교묘한 말과 잘 꾸민 낯빛)을 좋아하고, 강직하고 직간(直諫)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자(孟子)도 평생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한 나라 때 직간을 일삼았던 풍당(馮當)이라는 사람도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낮은 직급에만 머물러왔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자, 모란이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들은 신문대왕은 설총에게, “설총, 그대가 지금 얘기해 준말은, 매우 군주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우언이요, 이것을 글로 써서 후대 임금들이 교훈으로 삼도록 해주시오” 요구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설총의 <화왕계>라고 알려진 이 작품은, 국문학계에서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가전체 소설의 효시이다 평가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화왕계>라는 이 작품을 오늘날 우리가 읽어보면 설총이 유학의 핵심 개념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음을 저희들이 알 수 있습니다.
 
경주 보문동에 있는 고려시대에 ‘홍유후(弘儒侯)’로 추존된 설총 비석. 사진=필자
 
유학은, 공자의 가르침은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대해서 배척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잘 꾸민 말과 뻔지르르한 말과 잘 꾸민 낯빛”을 뜻합니다. 공자는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 못 박아 얘기했습니다. ‘잘 꾸민 낯빛과 뻔지르르한 말을 잘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어진 사람이 드물다‘라고 얘기했죠. 이 말을 전두환씨가 제일 좋아한다고 얘기해 가지고 황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총의<화황계>에는 군주로서 신하를 대할 때, 잘 꾸민 낯빛과 뻔지르르한 말에 획가닥 넘어가기에 좋죠. 장미가 얼마나 예쁘겠어요 획가닥 넘어가죠. 모란도 획가닥 넘어갈 수 있죠. 그거에 비하면 할미꽃처럼 강직하고 겉보기에도 벌써 상대가 안 되죠. 장미화 대 할미꽃입니다 경쟁이 되겠어요? 그렇지만 강직하고 충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 라는 교훈을 <화왕계>는 말하고 있습니다.
 
설총이 유가의 핵심적인 정치 교훈을 요약해내서 우화에 담았다 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설총의 <화왕계>는 우리 공동체의 최초의 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설총이 남긴 우언(寓言)인데, 굉장히 유학의 핵심 가르침을 가장 쉬운 언어 표현으로 군주에게 전달했다 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설총이 만든 이두(吏讀)을 어떻게 개발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면, 도움이 될 텐데 그런 기록은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설총이 이두(吏讀)를 만들었는데요, 이두를 만들어서 한자와 발음이 다른 우리의 고유한 말을 한자를 통해서 표기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겁니다. 이 이두를 창제함을 통해서 신라시대의 향가(鄕歌)들이 오늘날까지도 전래되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망매가>라든가 <혜성가>라든가 이런 작품들은 신라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우리가 오늘날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인데요. 설총이 고안해낸 이두(吏讀)가 없었다면, 문자로 정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설총이 고안한 이두는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낸  히라카나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지 않았을까. 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만. 일본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설총이 만든 이두에 해당하는 문자라고 할 수 있는 히라카나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4세기의 세종대왕께서 설총의 이두를 한 걸음 더 발전시킨 우리 고유의 표음문자로서 훈민정음이라는 한글을 만들어서 우리 발음과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죠. 그 출발점이 됐던 것이 설총의 이두(吏讀)의 고안이었다 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효 스님께서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아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설총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북 경산 시립 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는 설총의 동상.사진=필자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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