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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정치·사회, 세렝게티 약육강식과 같아"
'죽거나 죽이거나' 저자 허철웅
입력 : 2023-07-06 오후 4:46:5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렝게티죠. 한번 패배하고 나면 다시 재생의 기회가 없는 사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보는 게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 쓰게 됐습니다."
 
저자 허철웅씨가 최근 펴낸 신간 '죽거나 죽이거나: 나의 세렝게티'의 집필 동기에 대해 이 같이 말했습니다. 구한말 '금수회의록'처럼 동물들의 시선으로 누비는 소설. 책장을 열자마자 하이에나들이 밀려오고, 사자와 누 간 쫓고 쫓기는 대초원이 펼쳐집니다.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평원의 법칙'.
 
카프카의 '변신'처럼 일종의 알레고리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작가의 세계관이나 지향점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제도 구조를 세렝게티의 은유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신간 '죽거나 죽이거나: 나의 세렝게티'을 펴낸 허철웅씨. 사진=저자 제공
 
책은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마사이마라 평원, 마라강,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합니다. 최상위 포식동물 사자와 무리 생활을 하는 누 간의 관계가 스토리의 큰 뼈대입니다. 왜 사자와 누의 관계에 대해 조명했냐는 물음에 저자는 "세렝게티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게 사자고,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게 누"라며 "마라강을 건널 때 사자가 쫓으면 700만 마리 정도가 불안과 공포에 몰려서 스스로 죽는 상황이 꼭 우리 삶과 비슷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책의 의의는 단순히 사자와 누의 관계성을 다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우리사회로까지 연결되 지점으로 논의를 이끌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세렝게티판 레미제라블'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듯한 가상의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의지와 실천의 문제죠." 사자가 대머리 독수리와 이야기하며 삶과 죽음, 실존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도 저자는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이 없어졌어요. 자기 세계관을 확장하는 것에 대한 얘기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책에서 꼭 봐야할 대표적인 상황 중 하나로 타카티푸에서 다씸바(사자)와 응두구(누)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세렝게티의 모든 동물이 보는 대목을 꼽았습니다. "이것은 화해는 아닙니다. 죽여야 사는 사자와 도망쳐야 살 수 있는 누가 어떻게 서로 화해할 수 있겠습니까. 무자비한 질서를 부여한 자연을 이해하고 서로의 처지를 살피는 것이지요. 세렝게티의 짐승들이 그렇게 화해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얼마든지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지 생각해봤습니다."
 
신간 '죽거나 죽이거나: 나의 세렝게티'. 사진=가디언
 
저자는 1996년 〈대구매일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 ‘탁류’가 당선되며 등단했습니다. 등단 직후 이 소설을 구상했으나, 2004년 경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의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느라 책을 쓰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27년 동안 5번을 뜯어고쳤다고 합니다. 
 
"선거라는 게 사실은 전쟁이라 하잖아요. 출마하는 분들이나 선거치르는 분들 보면, 다른 페르소나 같은 게 없고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사람이 한계에 몰리면 본 모습이 드러난다고들 하잖아요. 사람의 여러 군상을 본 것이 집필에 귀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저자는 "정치 분야에서 도덕이나 실천 윤리가 사라진 너무 오래됐다"며 "전쟁만 계속하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면 일반 시민들은 각자 도생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세상 살아가야 할지 얘기 좀 하고 합의라도 최소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봤습니다.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 등은 비단 정치 분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특히 세대나 남녀 갈등, 빈부격차 같은 사회 문제들이 계속해서 극심해지고 있는 우리 상화에서 세렝게티가 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자본주의를 선택한 이상, 필연적으로 소수의 성공과 다수의 실패가 양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경쟁에서 패배하고 밀려난 이들에 대한 배려와 지원,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제는 중요하지요. 이긴 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편견과 증오도 문제입니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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