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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6화)원효의 계인연(戒因緣)
이두의 창시자 설총을 세상에 남기다
입력 : 2023-07-03 오전 6:00:00
이번 글에서는 원효스님의 일생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원효 스님의 일대기는 앞 글에서 말씀렸듯이 송나라 때 찬녕(贊寧) 스님이 편찬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실려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번 글에서 드릴 말씀은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원효불기(元曉不羈)> 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 글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원효불기(元曉不羈)>의 ‘불기(不羈)’에서 ‘기(羈)’란 말은 “말에 고삐를 맬 기” 자입니다. 말에 고삐를 맨다는 뜻이고, “불기(不羈)”라는 말의 뜻은,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 무애행(無碍行)을 실천하는 자유인으로 살았다”라는 뜻에서, 일연 스님은 그것을 “원효불기(元曉不羈)”라고 표현했습니다.
 
<원효불기>편에는 원효 스님의 중요한 일화가 나오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금강삼매경》의 주요사상이 범성불이(凡聖不異)와 부주열반(不住涅槃)과 계인연(戒因緣) 사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 가지 사상을 원효 스님의 일생에 대비해보면. 원효 스님은 세 가지 사상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원효 스님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다녔습니다. “수허몰가부(誰許沒軻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외침의 뜻이 무엇이냐면, “누가 나에게 자루가 빠진 도끼를 허락하겠는가? 나는 하늘을 지탱할 기둥을 깎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원효 스님께서 굉장히 야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일본 교토의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돼 있는 원효 스님 초상화. 사진=필자 제공
 
“수허몰가부(誰許沒軻斧): 누가 자루가 빠진 도끼를 나에게 허락할 것인가?“ 이 말은 매우 은유적인 표현이긴 한데요. 굉장히 야한 표현이긴 합니다.
 
제가 속된 사람이라서 야한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끼는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날 부분과 자루부분인데요. 날과 자루를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도끼구멍을 주물을 뜰 때부터 도끼구멍을 만들어놔야지 자루를 끼워서 쓸 수 있습니다. 도끼에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다가 자루를 나무자루를 때려 박아야지, 자루를 잡고, 도끼를 쓸 수 있게 됩니다. 원효 스님이 말씀하신 것은 “수허몰가부(誰許沒軻斧)” “몰가부(沒軻斧)”라는 것은, 도끼 자루가 빠진 ‘도끼날’만을 얘기합니다.
 
내가 도끼자루니까 도끼자루가 빠진 도끼 없나? 이렇게 얘기하는 거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도끼자루인데, 나를 끼워서 쓸 수 있는 도끼날 없나? 이런 얘기를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늘을 지탱할 기둥을 깎을 것이다. 굉장히 큰 일을 해낼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효스님이 노래하고 다녔을 때, 원효스님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태종무열왕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태종무열왕은 김춘추죠. 김춘추는 원효 스님의 말을 듣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원효 스님께서 큰 일을 하실려나부다 나라에 현인(賢人)이 많아지면 나라에 좋은 일이니, 인연을 맺어줘야 되겠다.“ 원효 스님의 아주 야한 은유를 김춘추는 다 알아들으신 겁니다. 그래서 부하들한테 지시합니다. 원효 스님을 요삭궁으로 모시라고 지시합니다.
 
왕실의 요석궁에 요석 공주가 있는데, 요석 공주는 당시 과부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먼저 화랑 김흠운에게 시집갔는데, 김흠운은 655년 ‘양산 전투’에서 백제군에 패하면서 전사합니다. 그래서 과부가 된 요석 공주는 요석궁에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말씀하신 “자루가 없는 도끼”에 딱 맞는 상태인 분이죠. 김춘추가 “원효 스님을 요석궁으로 모시거라”라고, 부하들에게 지시를 합니다.
 
원효 스님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는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의 제석사에 있는 ‘원효성사전’ 내부에 그려져 있는 원효 스님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도 가운데 원효 스님과 요석공주의 만남 장면을 묘사한 그림. 사진=필자 제공
 
김춘추의 명을 받은 부하들이 거리에 나가 보니, 원효 스님이 경주 거리를 걷다가 문천교 다리를 지날 즈음 일부러 강물에 풍덩 빠집니다. 물에 풍덩 빠지니까 홀딱 젖었죠. 그러니까 김춘추의 명을 받은 관리들이 젖은 원효 스님을 요석궁으로 안내합니다. 요석궁에는 과부가 된 요석 공주가 있었는데, 이때부터 속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어떻게 됐는지 이런 자세한 설명은 없어요.
 
그냥 “스님이 물에 빠져서 옷을 말리고 나왔는데 요석 공주님한테 태기(胎氣)가 있어서 아들을 낳았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아들을 낳아서 아들이 총명하다 라는 뜻에서, 이름을 설총(薛聰)이라고 지었다. 원효 스님의 속성(俗性)이 ‘설씨’입니다 설씨. 그래서 아버지 성을 따서 설총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수허몰가부(誰許沒軻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라는 원효 스님의 노래를 정확히 알아듣고, 원효 스님과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의 인연을 이어준 태종무열왕 김춘추. 사진=필자 제공
 
참 원효 스님도 대단하시죠. 옷 말리려고, 요석궁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옷을 벗어서 옷을 세탁기에 돌렸을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옷을 말렸는데, 그새 아기가 생겼어요. 근데 아기가 생겨서 요석 공주님한테 태기(胎氣)가 있어서 아들을 낳았다. 기록이 점프를 한 게 너무 많아서, 저희들은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효대사를 다룬 드라마가 몇 차례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김수영 시인이 <원효대사>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원효대사의 드라마가 “무슨 로맨스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고”, 라는 구절이 시에 나옵니다. 여인네들만 상상하는 게 아니라, 속인들이 다 상상하죠. 원효 스님이 어떻게 했을까? 물에 빠져서 젖은 옷을 갈아 입으러 들어갔는데, 어떤 절차를 거쳐서 요석 공주님이 태기(胎氣)를 가지시게 했을까? 라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는 문장을 일연 스님이 남겨놨을 뿐입니다.
 
원효 스님이 흔히 세상에 얘기하기를 파계(破戒)를 하고,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어서 아들을 낳았다 라고 얘기하는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원효 스님은 파계를 한 것이 아니라,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나오는 계인연(戒因緣)을 따른 겁니다.
 
원효 스님과 요석공주의 인연으로 태어나 ‘이두(吏讀)’를 창건하여, 신라사회에 큰 빛을 던진 설총. 사진=필자 제공
 
오늘날의 사찰에서도, 도를 닦는 스님이 몸이 너무 허약해서 병이 들면 주지스님이 고기를 사옵니다. 고기를 사와서 수행 중이던 스님에게 먹입니다. 고기를 금(禁)하는 불교의 계율이 있지만, 그것보다 병에 걸린 스님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말라 라는 계율을 깨는 거죠. 원효 스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성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라는 계율 보다 후대에 훌륭한 인물을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해서 실천했다 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효 스님이 욕정을 못 이겨서, 여성을 가까이 했다면 계율을 깨고, 여성과 가까이 했다 라고 말씀할 수 있겠죠. 이 경우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효 스님은 후대 사람들에게 백성들에게 득이 될 수 있는 현인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나오는 계인연(戒因緣)에 따라서 행동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오늘은 원효 스님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설총을 낳은 일화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글에서도 원효 스님의 삶에 대해서 이어서 조금 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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