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푸른 하늘과 흰색의 구름들, 그 사이 뉘여 있는 갈라진 고목은 흡사 오랜 시간을 버텨온 누군가의 모습.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언더스테이지. 무대 가운데 영상에 정박된 이 풍경이 서서히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가자, 마음에 묵혀뒀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은 참 힘들었는데,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됐어요. 석양처럼요."
2세대 K팝 그룹을 대표하는 빅뱅의 태양이 솔로 EP 앨범 ‘Down to Earth’로 돌아왔습니다. 이날 이곳에서 열린 미디어 청음회 공간을 태양은 작업실처럼 꾸며놓고 "전곡 작사에 참여한 만큼, 앨범 전곡에 담긴 제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버닝썬 게이트'와 멤버 승리의 빅뱅 탈퇴, 그리고 이어진 군 복무 기간(2018~2019)과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이날 태양은 관련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여러 상황과 시간에 의해 음악을 멈춘 상황에서 다시 스스로의 '초심'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태양 솔로 EP 앨범 ‘Down to Earth’. 사진=더블랙레이블
음반 제목 ‘Down to Earth’는 외계의 비현실적 존재가 아닌, 지구에 내려 와 있는 현실적 존재라는 뜻, 즉 진솔한 사람.
"태양 자체가 스스로 빛을 내는 행성이기도 하지만, 가장 성실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제 시간에 뜨고 지고, 구름이 있건 아니건 그 자리에 있으니까요. 어두움(밤)을 맞이하는데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방법으로 밤을 맞는 노을을 보면서 '새롭게 시작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타이틀곡 ‘나의 마음에’는 80~90년대 가요풍을 연상케 하는 발라드 넘버입니다. 피아노로 시작해 갈수록 더해지는 스트링 사운드가 곡의 감정선을 극대화시키는 곡. ‘그대여/ 나의 마음에 꽃잎이 되어 날리는 길이 돼 주오/캄캄한 나의 밤의 불빛이 되어’라는 편지 같은 가사는 유재하 ‘사랑했기 때문에’ 만큼이나 치장 없이 담백합니다.
"제일 아름다운 K팝이 나온 순간이 언제였을까 돌아보면, 80-90년대 때 가장 팝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한글로만 채워진 곡이 아니었을까 해요. 유재하, 김광석, 김현식 선생님처럼 우리나라 음악의 기초를 만드셨던 분들을 아직도 좋아하고요. 그렇게 순수하게 음악을 전하고 싶어요."
R&B 트랩 장르의 곡 '슝!'에는 블랙핑크 리사가 피처링으로 참여했습니다. 태양의 청량한 보컬에 블랙핑크 리사의 래핑과 후렴구의 엔진 사운드가 더해져 드라이브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태양은 "프로듀서들과 가볍게 장난을 치다가 멜로디가 나와 시작된 음악"이라며 "어떤 곡과 메시지로 음악을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물꼬를 틔워준 음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솔로 EP 앨범 ‘Down to Earth’로 돌아온 태양. 사진=더블랙레이블
앞서 태양은 방탄소년단(BTS) 지민과의 협업곡이자 선공개 형식으로 발표된 ‘VIBE’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76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활동기 때 친분을 쌓아온 지민, 리사와 이번 음반 작업까지 이어졌다”는 태양은 “빅뱅으로 때와 음악 활동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플랫폼 중심으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빅뱅 활동은 제가 가장 바라는 꿈”이라며 “당장 계획을 말씀드릴 순 없겠지만,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팬 분들 앞에 서지 않을까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이 외에도 앨범에는 다양한 장르를 세련된 현대풍 사운드로 디자인한 음악들이 수록됐습니다. 70년대 소울 장르를 재해석한 ‘나는’을 비롯해 70~80년대 펑키한 사운드와 경쾌한 기타 리프의 조화가 돋보이는 ‘Inspiration(feat. Beenzino)’, 신스팝 기반의 ‘Nightfall (feat. Bryan Chase)’ 등 총 6곡이 수록됐습니다.
2018년 배우 민효린과 결혼해 지금은 생후 17개월 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서의 상념과 단상들은 곳곳의 가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평소 ‘모두 다 꽃이야’ 같은 창작 동요를 불러주고 최근 ‘딸기’와 ‘악어’를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는 아들 모습에 감격했다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더라고요. 그런 아름다운 변화가 감사하고, 우리 아기와 가족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많은 것들이 결국은 음악이라는 작은 도구로 표현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단원을 내리는 ‘Nightfall’에서 그는 앨범 커버처럼 다시 고목에 앉아 노을을 마주합니다.
“지나왔던 모든 시간들이 하나의 건강한 나무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되어 피기도 했고 기쁨이 돼 열매가 맺혔던 시간들입니다. 이번 음악들이 다시 한 번 씨앗이 되어 건강한 나무가 됐으면 해요. 아름다운 노을 뒤의 밤, 그리고 새로운 아침이 새로운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솔로 EP 앨범 ‘Down to Earth’로 돌아온 태양. 사진=더블랙레이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