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이하 실손 청구 간소화)를 위해 발의된 법안들이 국회에서 논의 과정을 밟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의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실손 청구 간소화는 보험업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표면적으로는 보험금 지급 편의를 위해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보험사가 건강 정보를 손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만큼 소비자에 지급하는 보험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합니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었는데요. 회의 안건에는 총 6건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올렸습니다. 6건 모두 실손 청구 간소화를 위한 개정안입니다. 하지만 이날 법안소위에서도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실손 청구 간소화는 2009년부터 14년째 국회에 계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험업계에서는 대표적인 숙원사업으로 꼽히지만 그만큼 소비자의 우려가 크고 의료계 반발도 큰 쟁점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실손 청구 간소화는 쉽게 말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병원이 보험회사에 자동 제출하도록 전산 시스템을 갖추는 것입니다. 현재는 보험소비자가 보험금 청구 증빙서류를 의료기관에서 발급받은 뒤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보험업계는 실손 청구 간소화를 통해 보험소비자의 편의가 향상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현 시스템의 불편함을 다소 감소하더라도 청구 간소화를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험사가 확보하게 되면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부당 삭감의 근거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협회장은 "간소화를 통해 일부 의료정보가 보험사에 공유되는데, 이는 보험 가입자들에게 보험금 지급 거절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정보, 개인정보를 앞으로 보험사들이 공유하게 된다는 의미"라며 "현재도 보험사들이 제도를 악용해 보험금을 부당하게 깎는 사례에 대해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데 청구 간소화가 추진되면 더 많은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보험업계가 실손 청구 간소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보험금 지급 규모를 낮추려는 속셈이라는 것이 김 회장의 의견입니다. 김 협회장은 "일반 소비자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고액의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함이지만 보험금의 액수가 커질 수록 보험사들이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다"며 "현재는 보험금 지급률을 '지급건수'로만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구 간소화를 통해 지급 건수를 늘리면서 고액 보험의 지급을 거절하거나 보험금을 삭감하는 것이 보험사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보험업계는 의료자문을 통해 실손보험 관련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할 때 의료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제도지만 사실상 보험금 지급 거절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의료자문을 근거로 소비자에게 보험금 지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손해보험사의 보험금 청구건 중 의료자문실시 건수는 총 5만8855건이었습니다. 전년(4만2274건) 대비 39.2% 늘어난 것입니다.
당초 개인의 민감정보를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집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개인 건강의료정보를 민간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공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고 개인의 의료정보 보호 측면에서도 논란이 많은 사안"이라며 "민간 의료보험 회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는 문제가 맞는지 고민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 = 뉴시스)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