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몇 년 전, 제가 겪은 정신 건강 문제가 오늘 모조리 치유된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저녁 9시경,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팝스타 중 한 명인 라우브(Lauv·28)가 공연 도중, 수천명의 관중들을 굽어보며 말했다.
가부좌 형상의 이미지가 거대한 LED 전광판 가운데 쏘아 올려졌다.
"몇년 전부터 명상클럽('762-CLB-LAUV')을 운영 중입니다. 여러분의 정신 건강은 소중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세요.(LOVE YOURSELF)!"
지난 10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무대에 선 라우브. 사진=프라이빗커브
때로 음악은 '힐링 프로세스(치유 과정)'다.
아티스트가 성정을 다한 창작물은 개인 뿐 아니라 팬데믹과 전쟁으로 물든 세계와 세계인을 위한 '마음 챙김'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이날 선명한 초록의 오로라 영상이 켜지고, 서정적인 피아노 건반 소리 위 애달픈 삶의 독백이 고운 미성으로 흘러갈 때('Modern Loneliness'), 수천개의 핸드폰 플래시는 서로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날의 공연 직전 서면으로 만난 라우브는 "몇년 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이제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2014년 데뷔한 라우브는 음악과 삶이 아주 밀착된 뮤지션이다. 정규 1집 '~how i'm feeling~'의 ‘fuck, i’m lonely’ ‘Sad Forever’ ‘Modern Loneliness’ 같은 곡은 우울증, 강박장애 진단 이후 이를 극복한 과정에서 나왔다.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정신 건강' 문제에 관한 여러 행동에도 나섰다. 특히 정신 질환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세계인들을 위해 'Breaking Modern Loneliness'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수익금을 기부단체에 냈다.
라우브. 사진=Photo Cred - Lauren Dunn
동그란 달걀형 얼굴, 기타·건반·드럼 등 일곱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원맨 밴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애틀랜타 조지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뉴욕에서 대학생활을, 체코 프라하에서 유학을 했다. 라트비아 출신인 어머니를 따라 유르말라의 시골집에서 여름을 종종 보내기도 한다.
주(State)와 국경(border)을 넘어 이곳 저곳을 오간 '유랑자' 같은 삶은 음악에도 묻어나기 마련. 활동명 Lauv는 라트비아어 사자를 일컫는 용어에서 따왔다. 본명은 아리(Ari).
"이곳저곳에서 살았던 경험은 내 음악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다양한 곳에 살면서 여러 음악들을 접했던 경험들이 내가 다양한 음악 장르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Lauv’는 진짜 제 모습이 많이 담긴, 제 또 다른 자아입니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무대에 선 라우브. 사진=프라이빗커브
올해 발표한 정규 2집 'All 4 Nothing'도 인류 DNA를 자극할 만한 앨범이다.
특유의 밝은 햇살 같은 멜로디, 통통 튀는 리듬으로 깊은 내면의 우물을 길어 올린다. 특히 수록곡 'Hey Ari'는 자기 분신에게 쓴 편지 같은 곡. 스스로를 향한 '행복하니?' 물음은,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위로 유유히 흘러간다.
"이번 음반에선 현재의 제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어요. 그동안 우울했던 시기도 있고 커리어적인 부분에 대해서 불안함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나를 연결하는 과정을 담은 것입니다."
주로 어떤 사람, 경험,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날 때 곡을 쓰는 편이다. 가사와 어울리는 멜로디가 생각나면 핸드폰 녹음기로 메모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비트를 만든다.
"이번 음반은 그 비트와 마이크를 켜놓고 이후에는 프리스타일로 녹음을 해봤습니다. 전에는 해보지 못한 방식이어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고 결과물도 정말 좋았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좋아하던 메탈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난 10일 저녁 9시경,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사진=프라이빗커브
라우브는 방탄소년단(BTS)과의 협업으로 K팝 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Make It Right’, ‘Who’ 두 곡을 협업한 과정에 대해 라우브는 "BTS 런던 공연에서 만나게 됐고, 이때 처음 BTS가 Make It Right 리믹스를 부탁했다"고 돌아봤다. "믿어지지 않은 일이어서 나 자신을 꼬집었어요.(웃음) 그러고 나서 제가 ‘Who’라는 트랙을 보냈고 두 번째 협업이 성사됐어요. 그 뒤로는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모든 게 물 흐르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됐습니다."
이날 무대에 앞서 수천 관객들은 1시간 가량 무대 앞에서 꼬박 서서 기다렸다. 20대 초반 관객 임민정씨는 "우리 세대 중 라우브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평소 찰리 푸스나 트로이 시반 같은 알앤비 스타일의 팝 넘버들을 좋아하는데, 오늘 공연장을 나가면 제레미 주커나 페더 알리아스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것"이라 했다.
끝나고도 한참을 서서 라우브는 한국 팬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는 "오늘 공연('슬라슬라' 무대)은 음악 인생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항상 많은 응원과 사랑 보내주시는 한국 팬들을 보면 행운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본보 기자는 최신 앨범을 여행지로 비유해달라고 라우브에 물었다.
"이 앨범 수록곡 중 ‘Molly In Mexico’라는 곡도 있거든요. 마치 파도가 살짝 치는 멕시코 해변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 같은 앨범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