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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지 않을 권리②)노숙인 10명 중 4명 “아프면 그냥 참는다”
거리 생활자 1595명 중 37.5% "지정진료 어려워"
입력 : 2022-06-07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노숙인들에게 병원 방문은 최후의 수단이다. 특정 병원에서만 진료를 받게 하는 제도는 노숙인들의 병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노숙인 수는 8956명이다. 이중 자활·재활·요양시설 등 노숙인 생활시설에 입소한 노숙인이 7361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은 아플 경우 적극적으로 외부 도움을 받으려 한다. 생활시설 입소 노숙인 중 45.9%는 아플 시 대처방법으로 시설이나 복지기관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응답했다. 개인 병·의원을 찾는다는 이들은 16.5%였고 국·공립병원 진료가 13%, 종합병원 진료는 10.3%로 나타났다.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는 이들은 3.1%에 그쳤다.
 
 
문제는 거리의 노숙인이다. 말 그대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혹은 일시보호시설 등을 이용하는 노숙인은 지난해 1595명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서는 37.5%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답했다. 아플 때 대처방법으로 제시된 9가지 항목 중 '참는다'는 선택지를 고른 이들이 가장 많았다. 지난 2016년과 비교하면 당시 31%에서 6.5%포인트 상승했다.
 
참는다는 응답 다음으로는 무료진료소 진료가 17.9%를 기록했다. 약국 처방을 받는다는 응답은 15%로 집계됐다. 이밖에 △개인 병·의원 진료 12% △노숙인 시설 및 사회복지기관에 도움 요청 7.4% △국·공립병원 진료 5.7% 등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은 거리의 노숙인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로, 진료시설 지정제도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숙인들의 생활권과 거리가 먼 병원을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하면서, 의료시스템을 이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1년간 한시적으로 노숙인 진료시설을 대폭 늘렸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용산역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A씨는 지난 2월 다리통증을 느꼈으나 참다가, 홈리스 단체 활동가가 권유해 한달 뒤 병원을 가기로 했다.
 
A씨는 정형외과 진료를 받기 위해 동작구에 있는 보라매병원으로 향했다. 용산역을 기준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빠르면 20분 내에 도착하지만 걸어서는 1시간40분 가량이 걸린다. A씨는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차량을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활동가의 도움이 없었으면 A씨는 걸어서 병원을 찾거나, 무임승차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역에서 노숙하는 B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서울시립동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생활권인 용산역까지 2시간50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를 꼬박 걸어왔다. 그는 차비가 없는 상황에서 무임승차를 하기는 싫었다고 전했다. C씨는 만성 위장병 때문에 병원을 자주 가야 했는데, 거리가 먼 지정병원에 가기가 힘들어 한달 치 약을 미리 타 놓았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노숙인들의 병원 진료에 동행을 자주 하는데, 의료시설 지정 제도로 인해 용산역에서 지정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마치는 데에 수시간이 걸린다”며 “노숙인들이 병원을 가지 않고 참는다는 응답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부가 한시적으로 노숙인 지정병원을 늘린 게 뒷북대처라고도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코로나19 사태가 심할 때 국공립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노숙인들이 쫓겨나는 등 병원을 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며 “2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이제야 와서 지정병원을 늘렸지만 그마저 한시적이고, 지정병원 제도를 폐지하라는 인권위 권고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노숙인들은 이동수단을 이용하기가 여의치 않아 지정병원으로 가는 것 자체부터 어려운 일”이라며 “진료시설 지정 제도를 빨리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의 한 노숙인 모습.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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