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역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막강한 권력에 빗대 세간에 유행하던 얘기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못지않은 권한을 행사하는 청와대의 실세로, '소통령'으로까지 불렸다. 비서실장은 단순히 그 이름처럼 '비서'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국정운영 전반을 조율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야 함은 물론이며, 때로는 내각을 통제하며 여야와도 능수능란한 협상에 나선다.
매일 대통령을 대면하면서 국정 현안을 보고하고 논의하는 중책이란 점에서 국무총리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정치 구조도 한 몫을 했다. 특히 대통령의 스타일이나 시대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충성형, 실세형, 참모형, 비서형 등 이상적인 비서실장의 모델도 달라졌다.
이후락 당시 비서실장(왼쪽)이 김일성 북한 주석과 악수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비서실장의 권위는 박정희정권 이후락 비서실장부터 시작됐다. 1963년 이후락 비서실장은 39세 나이에 비서실장에 임명됐는데 재직한 6년간 명실공히 정권 실세로 군림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이 '소내각'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이 실장은 제갈공명의 지략과 조조의 리더십을 겸비했다고 해서 '제갈조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분류하자면 충성형에 가깝다. 1972년 극비리에 대북 밀사로 파견돼 김일성 북한 주석과 첫 남북비밀회담을 가졌다. 당시 북한이 국가 기밀을 요구하거나 일이 잘못될 경우에 대비해 자결용으로 청산가리를 품고 들어간 일화는 유명하다.
전두환씨는 킹 메이커이자 언론인 출신의 김윤환 비서실장을 뒀다. 김 실장은 '허주'(빈배)라는 자신의 호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 지형 속에 자신의 운신을 맡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야말로 빈배처럼 물에 자신을 띄웠다. 5선 국회의원에 당적을 바꾸면서 당 대표를 세 번이나 지낸 탓에 권력의 양지를 좇았다는 비판과 동시에 판을 읽는 정치 수완이 탁월했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다만 5공에서는 장세동 경호실장 등 하나회 출신과 허화평·허삼수·허문도 등 '쓰리 허'의 입김이 쎘다. 전씨의 업무 스타일도 비서실장을 건너뛰고 수석비서관으로부터 단독보고를 받았다는 점에서 김 실장은 비서형으로 분류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노재봉 서울대 교수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노 실장은 9개월 간의 재직 후 곧바로 총리로 직행하는 꽃길을 걸었다. 노재봉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추도사에서 수차례 고인을 '각하'라고 칭하며 연신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자 보좌를 했던 노 실장 역시 비서형으로 평가받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관용 비서실장을 뒀다. 박 실장은 직언을 하는 등 깔끔한 업무 수행 능력을 보인 참모형으로 분류된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소통령', '문민정부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국정에 개입하는 바람에 국정 전반에 크게 개입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 또한 금융실명제 깜짝발표에서 알 수 있듯 독자적 판단을 하기로 유명했다. 박 실장은 이후 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DJ정부 당시 박지원 비서실장(사진=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9단 박지원 비서실장을 뒀다. 박 실장은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청와대 공보수석,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불법 대북송금을 한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는 등 부침도 겪었다. 그는 참모·비서·충성형의 비서실장 상을 두루 보여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 비서실장을 발탁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투쟁하던 시절 재야 동지였으며, 비서실장이 된 이후에는 노 전 대통령을 묵묵히 보좌한 비서형으로 평가받는다. 노 전 대통령의 두 축은 안희정·이광재 등 이른바 금강파로 불린 국회 참모들과 문재인·이호철 등 재야 출신의 부산파였다. 문재인 실장은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된 첫 사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태희 비서실장을 기용했다. 대표적인 MB맨이었던 임 실장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다가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임 실장은 상대적으로 대통령 보좌에 무게를 둔 비서형으로 분류된다. 상당히 합리적 성향을 갖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검찰 출신의 김 실장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유명하다. 비서실장으로 중용된 뒤에서 막후 실세로서의 권한을 휘두르며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렸다. 김 실장은 정부 고위직 인사에 대한 사전 추천과 검증 기능을 담당하는 인사위원장까지 맡아 정권 실세로 권세를 누렸으나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발목이 잡혀 수감생활을 했다.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이 비무장지대 GP를 방문한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 비서실장을 뒀다. 50대의 임 실장을 임명하면서 문 대통령은 '젊고 역동적인 청와대'를 내걸었다. 이후 실세형의 노영민 실장을 거쳐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유영민 실장이 발탁됐다. 유 실장은 격식은 없애고 내용을 강조하는 업무 스타일로 그림자 보좌를 하는 철저한 비서형으로 분류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초대 비서실장으로 누구를 낙점할지도 관심이다. 윤 당선인은 현역 의원 배제 원칙을 언급한 바 있다. 비서실장으로 유력했던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과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도 "여의도로 돌아가겠다"며 선을 그었다. 장 실장은 그러면서 "정무감각과 경륜"을 비서실장 인선 최우선 기준으로 제시했다. 비서실장 인선을 두고 난항이 거듭되는 가운데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선대본부터 인수위까지 당선인의 정책을 총괄, 이를 실행할 최적임자로 꼽히는 가운데 그의 풍부한 정치 경험도 0선의 정치신인인 윤 당선인에게는 제격이라는 평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이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최소 3선 이상의 정무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며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중도 성향이 두드러지고 국민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소통형, 그리고 당청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형 비서실장을 물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사진=인수위 제공)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