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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경

(글로벌포커스)성장하는 베트남, 새로운 '아시아의 호랑이' 될까?

중국 이어 새로운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민간경제 자생력은 아직 취약

2016-08-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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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제조회사 ‘디버사텍’의 조나단 모레노 회장은 2009년 해외에 설립할 공장 부지를 물색했다. 여러 국가를 다녀본 끝에 내린 그가 내린 결론은 베트남이었다. 유럽과 미국은 너무 비싸고, 인도는 너무 복잡하고, 중국의 지적재산권 정책은 들쭉날쭉 했다. 베트남은 이제 막 외국 투자자들의 거처로 떠오르기 시작한 터라 염려되는 점이 없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노동력과 기업환경 등 여건이 좋다고 판단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 호치민시에 위치한 디버사텍 공장에는 수많은 직원들이 실습실에서 섬세한 진단기기를 조립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레노 회장은 바로 옆에 또 다른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는 베트남 경제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을 ‘또 다른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부르며 베트남이 한국과 대만의 뒤를 잇는 신흥경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은 1980년대 만해도 전쟁의 흔적이 가득한 최빈국이었지만, 1990년부터 연간 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중간소득 국가로 부상했다. 앞으로 약 10년간 이러한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면, 베트남은 한국, 대만 등과 같은 아시아 호랑이의 성공 궤적을 밟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침체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도 베트남에는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베트남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지난해 사상 최고치인 145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이어져, 2016년 상반기 투자액은 113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5% 상승한 수치다.
 
외국투자로 인한 베트남 경제 성장은 자유무역협정 덕을 톡톡히 봤다. 베트남은 미국과 일본이 포함된 12개국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최대 수혜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국에 대한 베트남의 수출 비중이 높고 TPP로 인해 예상되는 국내총생산(GDP)의 추가 상승폭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TPP 이외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ASEAN),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4대 자유무역 협정에 모두 가입한 상태이며, 2015년에는 EU 및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베트남이 중국에 이어 제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 동나이 주의 한 중국 전자회사 공장에서 제품을 조립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중국과 인접해 제조업에 유리한 위치 
 
자유무역협정으로 국제통상의 틀을 마련한 베트남 경제의 성장 동력은 ▲지리적 여건 ▲개방적인 정부 정책 ▲젊고 숙련된 인적자원 등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또한 베트남이 한국이나 대만, 중국처럼 지속적인 고속성장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의 지리적 여건은 베트남 경제에 경쟁우위를 부여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은 과거에는 군사적 발화지역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됐다. 제조업의 심장부인 중국 남부와 국경을 맞대며 육지와 해양 모두로 연결되는 위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베트남의 지리적 이점은 중국 대기업과의 생산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유리하다. 최근에는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매년 7% 이상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노동력을 대체하는 경우도 늘었다. 캐피털이코노믹스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공장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420달러인데 반해, 베트남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100~200달러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중국 기업들이 가치사슬의 윗 단계로 이동함에 따라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밑 단계인 제조 과정을 담당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중국의 주강 삼각주에 밀집한 제조업체 290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한 기업 중 30%가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공정을 타 지역으로 이전하길 원한다고 답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한 아시아 경제학자는 “중국과 가깝고 노동력이 풍부한 동남아시아는 세계 제조업의 차기 중심지가 될 것이며, 베트남은 이러한 동향을 반영하는 최적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유연한 개방 정책으로 해외투자 적극 유치
 
개방경제를 내세운 베트남은 국제교역을 통해 성장해 왔다. 현재 베트남의 국제통상 규모는 GDP의 150%를 차지하는데,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에 비해 훨씬 높다. 외국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베트남의 연간 설비투자의 4분의1을 차지한다. 외국기업은 또한 총 수출의 3분의2를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1990년대부터 국제통상 관련법규를 쉽고 간단하게 만들고 외국과의 교역을 장려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재료나 노동력은 자국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반면, 베트남은 이러한 규제를 철폐했다. 
 
베트남 정부는 또한 자국내 63개의 주가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경쟁하도록 장려했다. 호치민시는 제조업을 위한 산업단지를 구축했고, 다낭은 첨단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과 가까운 북부는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는 각각의 지역이 다른 산업에 집중해 산업의 다양화를 구축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베트남 정부는 장기적인 경제 5개년 개발 계획을 수립해 안정성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인적자원 육성과 교육에 집중
 
9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베트남에는 젊은 노동력이 많다는 점도 외국 기업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됐다. 중국 인구의 중간 연령은 36세인데 비해, 베트남은 30.7세에 불과하다. 또한 베트남 인구 10명중 7명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점도 장점이 됐는데, 지방 노동인구는 임금에 대한 압력이 높지 않아 노동집약적 산업을 육성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값싸고 젊은 노동력은 특히 숙련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베트남의 인력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보다 수준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베트남의 교육 정책이 뒷받침한 결과다. 인적자원 육성에 힘을 쏟는 베트남의 공교육은 GDP의 6.3% 규모에 달한다. 다른 중간소득 국가의 평균 교육비보다 2%나 높은 수준이다. 15세 학생의 지적능력을 평가하는 세계 순위에서도 베트남 학생의 수학과 과학 실력은 미국과 영국 학생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양질의 인력을 원하는 외국 기업과의 교역을 증진시켰다. 기술 혁신으로 공장이 자동화되더라도 기계를 조작하는 직원은 언제나 필요하다. 직원이 갖춰야 할 능력은 단순한 노동력보다는 언어적, 수학적으로 복잡한 기계조작과 지시사항을 따를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서방 국가에서 인기 많은 구제 청바지를 생산, 수출하는 사이텍스에서는 직원들이 레이저나 나노버블 워셔 등과 같은 복잡한 기계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민간부문 자생력 키워 경쟁력 강화해야 
 
한편 베트남은 민간경제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베트남의 계획투자 부처는 올해 초 세계은행(WB)과 전략 변화를 논의해 ‘베트남 2035’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베트남 정부는 보고서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힘써 민간부문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의 재정적자는 5년 연속 GDP 6% 증가라는 2016년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익 개선을 위한 방편으로 베트남은 지난해 200개 이상의 국영기업을 부분적으로 매각했다. 지난 7월에는 베트남의 최대 유가공 제조업체인 비나밀크의 외국 지분 제한(최대 49%)을 완전히 없애 주목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기점으로 앞으로 더 많은 외국 투자자가 잠재력 높은 베트남에 진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빈국에서 벗어나 중간소득 국가로 분류되면서 더 이상 개발은행의 특혜를 받지 못하게 된 점도 베트남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WB는 2017년부터 베트남에 대한 특혜 대출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두되는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 물결 또한 자유무역협정에 근간한 베트남의 국제교역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이 지금 험난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며, 아시아의 성공 신화를 이어가려면 용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지선 국제경제분석가·미국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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