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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New스토리)가볍지만 강하다…경량화 2.0시대 개막

알루미늄 차체·플라스틱 부품으로 패러다임 바뀐다…'연비절감' 효과 기대

2015-07-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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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빠지면 힘도 줄어들 것이란 편견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겸하면 불필요한 살이 줄어드는대신 근육량이 늘어 오히려 힘이 더 세진다. 허약체질이 건강체질로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다. 살이 빠진 이후에 찾아오는 요요 현상은 남의 이야기다. 제대로 된 다이어트는 몸무게를 줄여줄 뿐 아니라 사람의 체질 자체를 강하게 해준다.
 
건강 다이어트는 경량화 2.0 개념에도 일맥상통한다. 단순히 무게만 줄였던 1.0시대와 달리 2.0시대에는 경량화와 체질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예전에는 경량화의 대가로 내구력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내구력을 유지하거나 더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가령 자동차의 경우 무게가 줄어들면 에너지 효율 즉 연비는 좋아지고 차체의 강도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경량화 2.0시대에는 연비와 내구성 모두 살리는 일이 가능해졌다. 최첨단 기술이 일반 물리학 법칙을 뛰어넘은 셈이다.
 
경량화 2.0 시대의 숨은 주역은 신소재 기술자들이다. 이들은 자동차와 항공기, 스마트 기기, 가정용품에 첨단 기술이란 외투를 입혀줬다. 이 외투는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 그 중 각광받고 있는 소재는 알루미늄이다. 알루미늄은 경량화 2.0시대를 대표하는 금속 중 하나로 철보다 33% 정도 가볍다. 자연히 철보다 강도가 떨어지나, 다른 물질을 첨가해 합금을 만들면 철 못지않은 강도를 지닌 슈퍼 알루미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아울러 산화에 강한 알루미늄 고유의 장점을 잃지 않아 녹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가공 문제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데다 제작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술이 진일보해 이러한 문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포드 자동차 생산직 직원이 미국 미주리주(州) 클레이코모에 있는 캔자스시티 조립공장에서 신형 포드
F150 트럭의 차체를 조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동차, 알루미늄 차체 걸치고 연비 줄여  
 
자동차 업체들은 알루미늄 합금을 차체에 적용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기업은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다. LG 경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포드는 연방정부의 연비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경량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포드는 알루미늄 차체를 통해 차량당 700파운드(318kg)를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차량 전체 무게의 13%에 해당하는 것으로, 포드는 덕분에 10% 이상의 연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포드 연구진은 풀사이즈 픽업트럭에서 700파운드를 줄이면 에너지 효율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포드는 최고급 세단이 아닌 대중적인 모델에 경량화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실제로 포드의 대중차로 통하는 픽업트럭 ‘F-150’은 강철 대신 알루미늄 차체로 갈아입고 지난 2014년 하반기에 출시됐다. 포드는 알루미늄 바디를 적용한 픽업트럭이 충성 고객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픽업트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판매 순위 1위로 꼽히는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F-150은 지난 32년간 북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로 지난해에는 무려 76만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같은 기간 일본 도요타 ‘캠리’의 판매 대수가 46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그 인기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은 포드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면서 알루미늄 소재에 하나둘씩 손을 뻗고 있다. 독일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우디는 5세대 ‘A4’ 모델 지붕에 알루미늄을 덧대어 무게를 확 줄였다. 벤츠와 재규어, 제너럴모터스(GM) 등 유명 자동차 기업들 또한 알루미늄 합금 이용을 늘리며 경량화 대열에 합류했다. 실제로 벤츠가 만든 ‘C클래스’는 외판과 골격에 알루미늄 합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전 모델보다 무게를 70kg 감량했고 재규어랜드로버는 ‘재규어XE’ 차체의 75%를 알루미늄으로 대체해 몸무게를 확 줄였다. GM은 캐딜락 대형세단 신모델인 ‘CT6’에 알루미늄과 경량 신소재를 첨가해 종전보다 무게를 90kg이나 빼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차체 알루미늄 적용 비중이 대폭 늘어 알루미늄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조사 기관인 더커는 오는 2025년까지 북미 자동차 알루미늄 소재 사용 비율이 현재보다 40%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알루미늄 차체 도입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알루미늄 차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만한 공장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카센터들이 알루미늄 차량 수리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 또한 문제로 꼽힌다. 차량 보수 서비스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항공기, 3D 프린터 부품 탑재해 비용 절감   
 
플라스틱 또한 경량화 2.0 시대 들어 그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그동안 가공성과 투과성이 뛰어나고 무게가 가볍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강도가 너무 낮아 제한적으로 쓰여왔다. 무거운 하중과 고열을 감당하는 일에도 취약해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3D프린터가 등장하면서 플라스틱의 위상이 달라졌다. 3D 프린터는 AM(Additive Manufacturing Technology) 기술을 적용해 한층 한층 재료를 쌓아 구조물을 제작한다. 이때 원료로 플라스틱을 넣어주면 더 강화된 플라스틱을 얻어낼 수 있다. 설계도만 있으면 얼마든지 튼튼한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판이 형성된 것이다.
 
열간등압성형(HIP)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3D 프린터 부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3D 프린터로 만든 부품에 남는 잔류응력 문제 때문이다. 알루미늄 업체 알코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3D 프린터 연구에 2200만달러를 들이부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잔류응력은 원재료에 외력(外力)이 작용할 때 내부에 생기는 저항력을 뜻한다. 내력(內力)으로 불리기도 하는 잔류응력은 외력이 증가할수록 커진다. 원재료마다 외력을 감당할 수 있는 고유의 한도가 있는데, 이를 벗어나면 재료는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HIP 기술 덕분에 많은 문제가 해결된 상태다.
 
잔류응력 문제가 일정 부분 해소되자 다양한 업체들이 3D 프린터를 이용한 부품 산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3D 프린터의 장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항공기 제작업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객기 소형 부품을 쏟아냈다. 부품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면 여객기 몸체가 가벼워져 제트연료 비용이 적게 든다. 노스웨스턴대학 연구진은 여객기에 3D 프린터 부품을 도입할 경우 에너지 소비를 전보다 6.4%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항공기 업체 보잉은 3D 프린팅을 할 때마다 비용이 최대 50%까지 줄어든다고 밝힌 바 있다. 컨설팅업체 긱와이어에 따르면 보잉은 비행기 부품 300여 개를 3D 프린터로 생산하고 있다. 보잉과 더불어 항공기 업계 양대 산맥으로 통하는 에어버스도 3D 프린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에어버스 ‘A350 XWB’ 여객기에 3D프린터로 만든 부품이 무려 1000개가 넘게 들어간다. 에어버스는 향후 몇 년 이내에 3D프린터로 플라스틱 부품뿐 아니라 금속 부품까지 만들 계획이다. 이처럼 3D 프린팅 원료로는 보통 플라스틱이 사용되나, 최근 금속과 금속합금, 석고 등 새로운 소재도 첨가되는 추세다. 금홍석도 떠오르고 있는 원자재다. 금홍석을 이용하면 티타늄 합금과 티타늄 파우더를 얻을 수 있다. 둘은 항공기 특수 부품의 원료로 쓰인다.
 
제작 가능한 부품 규모는 엔진 같은 소형 부품에서 대형 부품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여객기 버팀대나 경첩 제작에도 3D 프린트를 활용하면 몸체 무게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입은 모은다. 버팀대는 현재 1.09kg 정도 나가는데, 이걸 3D 프린트로 만들면 0.38kg까지 무게를 감량할 수 있다.
 
◇휴대폰, 리퀴드메탈로 옷 갈아입어 
 
경량화 2.0 바람은 최첨단 IT 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주자는 내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이다. IT 누리꾼들은 휴대폰 업체 애플이 ‘아이폰7’ 프레임 소재로 리퀴드메탈을 선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6 심카드 슬롯에 리퀴드메탈을 가미한 바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리퀴드메탈테크놀로지와 리퀴드메탈 독점사용권 계약을 또다시 연장하기도 했다. 이로써 사용권 계약 기간은 내년 2월5일로 늘어났다. 리퀴드메탈은 티타늄, 니켈, 구리, 지르코늄 등을 합친 무정형 메탈 합금으로 가볍지만 견고하다. 전자제품에 흔히 쓰이는 스테인레스스틸보다 1.5배 강하다. 탄성력도 있어서 파손되는 일도 적다. 잘 부식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리퀴드메탈은 테니스 라켓이나 골프채의 원료로도쓰인다. 이달 초 타이완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은 리퀴드메탈을 이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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