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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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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과 경쟁, 소련 붕괴 같은 결과 기대 안해" 공식선언…우리는?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포린어페어스' 기고

2023-10-27 06:00

조회수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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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뉴시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미국 외교협회(CFR)가 1922년부터 발행한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외교·안보분야 전문 매체일 겁니다. 조지 케넌이 1947년에 '미스터 X'란 필명으로 '소련 행동의 연원' 기고문을 '포린어페어스'에 실었고, 이 글이 냉전 시절 미국의 대소련 봉쇄정책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키맨이라 할 수 있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이 매체에 '미국 파워의 원천-변화된 세상을 위한 외교정책'(The Sources of American Power-A Foreign Policy for a Changed World)이라는 제목으로 실명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그는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 기조를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주도한 최측근입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 글에서 냉전 이후 국제 정세의 변동과 미국의 대응을 일별한 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철학과 정책 기조는 물론 구체적인 정책방침까지 소개했습니다.
 
당연히 눈길은 중국 관련 대목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요.
 
"우리는 중국이 당분간 세계 무대에서 주요 플레이어로 남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번영하고 안전한 국제 질서, 즉 미국과 우방의 이익을 보호하고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는 질서를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련 붕괴와 같은 혁신적인 최종 상태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이득을 얻겠지만 중국도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이 대목은 "지난 5년 사이 본격화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2021년 여름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 논문을 마치 직접 보고 반박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미-중, 긴장 완화와 경쟁 관리하는 방법 찾아야"
 
설리번 보좌관은 과거 소련과의 냉전에 대해 "상호 의존도가 매우 낮았던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졌다"면서 "오늘날의 경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있다"고 규정한 뒤에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경쟁국, 특히 중국이 근본적으로 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의 도전에 대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경쟁을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의 외교를 강화하고 기존 소통 채널을 보존하고 새로운 채널을 만드는 이유"라고 강조했습니다. 기고자의 무게나 매체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쯤 되면 미국이 전 세계에 대고 중국과의 '평화로운 경쟁, 평화로운 공존'을 공개 선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도 보고 싶어 하는 발전"…이란-사우디 관계정상화 중국 중재도 인정
 
설리번 보좌관은 놀랍게도 그동안 미국이 좌지우지했던 중동에서의 중국 역할까지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또 경쟁자들이 하는 모든 일이 미국의 이익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올해 중국이 중개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거래는 양국 간의 긴장을 부분적으로 완화했으며 이는 미국도 보고 싶어 하는 발전"이라고 했습니다.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을 두고 당시 "(중동 정세를 주도해온 미국의) 바이든이 뺨 맞았다"는 평가까지 나온 바 있으나, 설리번 보좌관이 중국의 유의미한 역할을 인정하고 평가한 겁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는 "미국과 중국은 빠르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인공지능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양측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중 간 공동협력 대상으로 인공지능 분야를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고유한 도전을 제기할 수 있으며, 강대국들은 이에 대처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냉철한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자국 이익 위해 노력하는 것, 당연"…미-중 중간 지대 국가들의 활동도 인정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과 중국의 중간 지대에 있는 국가들의 활동 공간도 인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들이 경쟁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동시에 파급 효과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들 국가 중 다수는 냉전과 비동맹 운동의 창설로 거슬러 올라가는 서방에 대한 뚜렷한 비판과 나름의 논리를 가진 남반구의 일부로 스스로를 간주한다. 그러나 냉전 시대와 달리 미국은 지정학적 경쟁의 프리즘으로만 세계를 바라보거나 이들 국가를 대리 경쟁의 장으로 간주하려는 유혹을 피할 것"이라고 한 겁니다.
 
설리반 보좌관의 이 같은 입장 천명은 물론 단기적으로는 내달 개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미중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립서비스 성격도 있겠으나, 이 또한 전략적인 기조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할 겁니다. 미국과 중국이 바로 화해하고 이전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트럼프정부때나 바이든정부 초기처럼 갈등 일변도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해졌습니다. 중국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25일 베이징을 방문한 개빈 뉴섬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만나 "중국의 대미 정책은 상호 존중, 평화 공존, 협력 호혜로 일관돼왔다"면서 “중국은 계속해서 이 방향을 향해 노력할 것이고, 미국 역시 중국과 함께 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하는 등 대미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겁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윤석열정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선 때부터 중국을 비판해 온 현 정부는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과의 대립각을 국제적으로 더욱 분명히 했습니다.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거쳐, 시 주석의 방한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중국측은 리창 총리가 참석할 한중일 정상회의까지는 몰라도 시 주석 방한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높습니다.
 
시진핑 주석 방한 가능할까?
 
지금처럼 한국에서 선거 때마다 혐중 정서를 활용하려 하고, 중국을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본대쯤으로 상정하면서 갈등 관계를 만들려는 행태를 계속해서는 희망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중 관계 그리고 한중 관계 개선은 파탄상태인 한반도 정세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언제 국지적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남북한 자체적으로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에서, 국제정세의 변화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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