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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

[IB토마토]IRA발효에 현대차·기아 된서리…"국내 업체만 불리한 것 아냐"

자국 내 전기차 업계서도 볼멘소리…판매차 중 70% 해당 법안 영향

2022-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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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2년 08월 24일 15:19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이하영 기자]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현대차(005380)·기아(000270) 등 국내 자동차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현대차·기아가 생산한 전기차가 2025년까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전기차 생태계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법이지만 애꿎은 우리 기업에 불똥이 튄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업계에서는 우리에게만 불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는 당분간 IRA 규정에 의해 당분간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설립 예정이던 전기차 공장을 6개월 앞당겨 착공하더라도, 완공은 2024년 상반기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아이오닉6.(사진=현대차)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착공을 앞당기는 것을) 검토 중인 것은 맞지만 확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터리 등 핵심부품의 미국산화에 대해서도 “배터리 관련은 관계사에 문의해야 할 것이다. 배터리 적용이 한국산으로 될지 미국산으로 될지도 알 수 없고 확정된 것이 없다”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IRA는 미국 하원에서 지난 12일(현지시각) 통과된 법안으로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3690억 달러(약 494조 7100억원) 상당 대규모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까지 절감하는 것이 목표다. 이 중 전기차 관련 핵심 내용은 미국 및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전기차를 만들어야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7500달러 중 각각 절반씩 원자재 및 부품 관련 기준이 존재한다. 원자재는 원산지 기준을 미국향으로 2023년까지 40%까지 달성해야 하며 이후 10%씩 상향해 2027년부터는 80%에 맞춰야 한다. 부품의 경우 2023년까지는 절반, 2029년부터는 전체를 미국 및 미국FTA 국가에서 만들어야 보조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안 발효 후 최종 차량 조립도 미국에서 진행돼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의 대표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는 전량 한국에서 생산돼 수출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를 맺은 20개국 중 하나이나 미국에 생산공장이 없어 최종 차량 조립이 가능한 시점은 사실상 3년여 뒤인 2025년이다. 원재료와 부품 측면에서도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상태로는 IRA 법안을 통과할 수 없어 국내 전기차는 중국산 전기차와 같이 보조금을 받지 못할 위기다. 1000여만원의 보조금 수혜가 좌절될 경우 미국 소비자에게 그만큼 비싸게 팔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아이오닉5가 4만7450달러(약 6300만원) 수준으로 올라 4만6990달러(약 6299만원)인 테슬라 모델3 후륜구동 보다 비싸진다. 
 
보조금 지원이 끊길 경우 현대차와 기아는 전기차 신시장으로 손꼽는 미국에서 점유율 확장이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 1분기 기준 현대차는 미국 전기차 점유율 9%로 테슬라(75.8%)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산업부, WTO 제소 논의…전문가 “한국만 불리한 것 아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의 IRA에 대한 우려가 크다”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IRA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원칙인 최혜국 대우를 위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다는 논리다. 
 
산업부가 이렇게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동차산업이 우리나라 GNP(국민총생산)의 18%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럽연합(EU)도 우리와 사정은 매한가지다. WTO 차별금지 협정을 위반해 양자 간 기후변화 대응 협력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며 IRA 법안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맞춤한 법안인 것 같지만 의외로 해당국 내에서도 IRA 통과를 놓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도요타 등이 속한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IV)의 존 보젤라 회장도 IRA와 관련해 “대다수의 차량 소유자가 당장 혜택을 받을 수 없다”라고 지적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제 미국산 전기차도 한국산 배터리 등을 사용하고 원자재 중국 의존도가 높은 만큼 2032년에 만료되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가계 소득 대상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IRA를 두고 “전기차 보조금을 안 주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중 70%가 이번 조치의 영향을 받는다”라며 “현대차와 기아의 문제만이 아닌 만큼 특별히 불리한 상황도 아닐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경쟁업체들에 비해 비교열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IRA와 관련해 실망만 하기에는 이르다는 논리다.  
 
송선재·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도 “보조금 지급에 대한 세부규정이 강화되면서 이를 맞출 수 있는 업체들 위주로 수혜가 돌아갈 수밖에 없고, 관련 규정을 맞추기 위해 북미 내 현지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시설의 필요성이 점증할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과 FTA 대상 국가이고, 한국 완성차들과 배터리 핵심 공급업체들이 미국 내 공장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규정을 맞추기 수월해 전체적으로 기회 요인이다”라고 판단했다.
 
 
대응 방법 강하게…원자재·부품은 중국향 벗어날 기회 삼아야 
 
다만 당장 보조금이 걸린 만큼 대응방법은 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IRA) 세부조항의 변경을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라며 “실제 추가 투자나 일자리 창출 등 여러 가지 미국에 혜택이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현대차) 공장철수 등 강력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미국에 약속한 경제적 투자에 보다 강하게 이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올해 미국향 투자를 늘리겠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미국 조지아주에 신규 전기차 공장 설립을 포함해 105억달러(당시 13조8558억원 수준)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사업 지지를 호소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미국을 선택해준 데 대해 감사하며 미국은 현대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화답한 바 있다. 
 
지난 6월 투자계획 보류를 밝히기는 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373220)도 올해 미국 조지아주에 1조7000억원 규모 배터리 공장 투자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은 미국으로 날아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만 70억 달러(약 9조30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국내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과감한 미국 투자를 결정지었음에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뺀 것은 향후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산 원자재·배터리에서 벗어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는다.  
 
유진투자증권(001200)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의 중국 수입 비중은 리튬 83%, 망간 73%, 코발트 81%, 흑연 90% 등이다. 뉴칼레도니아에서 91%를 들여오는 니켈을 제외한 핵심 배터리 소재 광물 대부분의 중국 의존이 심각하다.  
 
중국에 기대는 기존 공급망을 바꾸기 힘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한 차 부품이나 소재산업 공장이 이미 대규모로 투자돼서다. 현대차와 기아는 중국에 총 211만대를 만들 수 있는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338만대 규모를 제외하고 인도(75만대), 미국(71만대), 멕시코(40만대), 슬로바키아(33만대), 터키(20만대), 브라질(18만대) 등 글로벌 각국에 분포된 현대차·기아 생산기지 중 단연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전기차 생산에서 중국 의존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다수 나왔다. 중국 공산당의 경제적 제재나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인한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라며 “중국에서 국내 전기차 판매가 지속 감소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 조지아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께까지는 원재료와 부품 생산지 다변화를 마쳐야 할 필요성도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자동차 회사가 외국에 나가 공장을 설립하면 부품 공장이 따라가는 것이 정상이다”라며 “(미국향 원자재나 부품 등) 그런 부분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하영 기자 greenbooks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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