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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

(기자의눈)개미만 희생되는 쪼개기 상장 "이제 그만"

2021-12-28 06:00

조회수 : 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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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 기대감에 주가가 급등한 LG화학(051910)은 돌연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알짜 사업을 자회사로 떼어낸단 소식에 기존 주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주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약 1년이 흘러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이 임박한 현재, 100만원도 넘어섰던 LG화학의 주가는 60만원 초반까지 내려왔다.
 
비단 LG화학의 일만은 아니다. '쪼개기 상장'으로 기존 주주들이 타격을 입는 일은 유독 국내 증시에서 반복되고 있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사업을 분사한 만도(204320), 지주회사 전환 방식으로 물적분할을 선택한 POSCO(005490), 콘텐츠 제작 부문을 물적분할한다고 발표한 CJ ENM(035760) 모두 분할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 일부 회사들은 신설 자회사를 상장시키지 않을 거라며 주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하지만 LG화학 역시 최초 분할 공시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을 비상장법인으로 한다고 기재했다. 커지는 투자자 불안에 '쪼개기 상장 금지' 국민 청원까지 등장했다.
 
분할 자체를 비판하긴 어렵다. 기업 입장에선 서로 성격이 다른 사업을 다른 법인으로 분리해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을 선택하는 이유는 오너 일가의 지배권 약화 없이 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쪼개기 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이 희생된다는 것이다. 인적분할의 경우 주주들이 기존 법인과 신설 법인의 지분 모두를 직접 가질 수 있다. 반면 물적분할은 100% 모회사 소유로 독립하는데, 이 자회사가 이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상장하면 모회사 주주들의 신설법인에 대한 간접 투자 영향력은 급감하게 된다. 모회사의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분사 후 상장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건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해외 기업들은 이해 상충으로 인한 소송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자회사와 모회사가 동시에 상장되는 사례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으며 영국에선 5%, 일본에선 7%에 불과하다. 
 
그룹사의 성장이란 명목으로 주주만 희생시키는 방식은 곤란한다. 우리나라에선 기업을 상대로 한 주주들의 소송이 활발하지도 않기에, 당국과 정치권에서 제도 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무분별한 쪼개기 상장을 금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진척은 없는 상태다.
 
일반 주주들의 의사에 반할 경우 회사가 주식을 의무적으로 매입해주는 '주식매수청구권' 등도 고려될 만하다. 이번 쪼개기 상장 논란이 기업들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주들이 보다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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