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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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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에서 '하나회 해체'를 떠올린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다 높게 평가받아야할 이유

2021-02-05 02:00

조회수 : 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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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얀마 상황
 
지난 2월1일 미얀마 군부의 전격적인 쿠데타가 발생해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이 억류됐다.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 상급대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민 슈웨 부통령으로부터 권한을 이양 받아 1년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실 미얀마는 1962년 네윈 쿠데타 이후 군부독재가 이어진 나라다. 그 와중 1988년 버마 독립 영웅의 딸인 아웅산 수치가 영국 유학에서 귀국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으며 민주화 운동을 해왔고, 2011년 반쪽 민정 이양에 성공한다.
 
그러나 군부는 호시탐탐 권력 회복의 기회를 노렸다. 단적으로 군부는 2008년 개헌을 단행해 수치 고문의 대통령 출마를 막았고, 국회의원의 25%를 무조건 군부에 할당시켰으며,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부정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2020년 11월 총선 대패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되찾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자신들이 학살한 로힝야 족이 불참한 '부정선거'라는 억지를 부려 쿠데타를 일으켰다.
 
과거 박정희 국가재건위원회 의장이 윤보선 당시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받은 것, 전두환의 하나회 세력이 '서울의 봄'을 문제삼아 쿠데타에 나선 것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다.  
 
2. '하나회'란 무엇인가
 
하나회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육군 사관학교 11기 동기들과 그 후배들을 구성원으로 한 육군 내 비밀 사조직이다. 군부 내 친위세력을 원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원으로 성장했고, 10.26으로 박정희가 죽자,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해 전두환이 정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위 ‘신군부’로 불리는 정치군인들이다.
 
하나회는 박정희 정권 초창기부터 핵심 요직이었던 보안사령관과 특전사령관, 수도권 사령관 등을 독점하며 세력을 키워갔다. 가입 조건은 선배들이 인정하는 '영남 출신'의 '친박정희'인 '엘리트’'장교다. 다만 다른 능력이 탁월하면 타 지역 출신도 가입은 가능했다. 전두환의 충신 장세동이 대표적으로 그는 호남출신이다.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의 250여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 하나회 회원은 군사정권하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군내 핵심 요직들을 독차지했고, 군을 전역한 뒤에도 장관, 국회의원, 주요 공기업 사장 등 사회 최고위층에 포진해 군사정권의 든든한 지지세력이 됐다.
 
3. 금이 간 하나회 철옹성
 
하나회의 몰락은 1인자 전두환과 2인자 노태우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노태우는 전두환 정권의 2인자로 여겨져 왔지만, 정권을 물려받기까지 오랜 견제와 모멸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전두환은 자신이 의장인 '국가원로자문회의' 등을 설치해 퇴임 후에도 일종의 '상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직선제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배 보내고 5공 청문회 등으로 정부과 군부 내 전두환계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쳐냈다. 그 빈자리에는 자신의 인맥을 약진시켰다.
 
이 과정에서 똘똘 뭉쳐있던 하나회가 다소 느슨해졌다. 여기에 군 내부에서 하나회와 비하나회의 갈등이 심화돼 일부 육사 기수에선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지곤 했다.
 
4. 김영삼의 ‘대도무문’
 
금융실명제와 함께 하나회 해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의 과단성이 없었다면 하나회 해체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후 불과 10일이 지난 1993년 3월8일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서완수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하고 비하나회 출신인 김동진 연합사 부사령관과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을 각각 육군총장과 기무사령관에 임명했다.
 
바로 다음 날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모두 깜짝 놀랬재"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4월 초 백승도 대령이 하나회로 의심되는 125명의 명단을 용산구 군인 아파트에 뿌리면서 사태는 커졌다. 한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 하나회 출신 장군들이 경질돼 당시 하루에 떨어진 별의 갯수만 50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신임 장군에게 달아줄 별이 부족해 돌려썼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일부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는 역으로 '하나회 쿠데타 모의설'로 연결됐다. 이후 하나회 출신 장군들은 거의 대부분 강제전역을 당하고 영관급 인사들도 지속적으로 인사에서 밀려나며 하나회는 말그대로 발본색원된다.
 
5. 결론
 
일부 정치학자는 전두환 이후 6공화국의 대통령이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진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도 표현한다.
 
쿠데타의 주역이었지만 나름 민주적인 정치와 진보성향 정책을 추구했던 노태우,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과단성과 행동력을 지닌 김영삼,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진 김대중이 잇달아 집권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나마 뿌리를 내리고 자라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최근 미얀마의 상황을 보면 그 평가가 딱히 틀린 것 같진 않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보다 높아야 하는 이유다. 
  • 이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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