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측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국이 주장하고 있는 국가간 면책은 이 사건에 적용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범죄행위가 반인륜적이고 기본 인권침해인데다가 국내 헌법질서에도 위반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위안부 피해자 측 소송 대리인은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유석동)의 심리로 열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국의 범죄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면제는 한 나라의 국내법으로 다른 국가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국제법상 관습법이다. 일본국은 이번 소송에 대해 국가면제 원칙을 들며 이번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했다.
고 곽예남 할머니 영정사진이 소녀상 옆에 놓여있다. 사진/뉴시스
위안부 피해자 측은 "국가면제론은 그 폭이 좁아지고 있는 추세"라며 '이탈리아 페리니 강제노역 사건'을 그 사례로 들었다. 해당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을 했던 페리니가 이탈리아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004년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국제범죄국가 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면서 소송을 각하한 원심을 파기했다. 독일은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에 국가면제론을 들며 이탈리아를 상대로 제소했다. ICJ는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론이 유효하다고 판단했지만 학계에서는 "국가면제의 적용 범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국가들의 실행만으로 국제관습법 내용을 성급하게 확정지었다"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2014년 피렌체 지방법원은 ICJ 판결을 국내에 수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국내 헌법을 위반했다면서 위헌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국가면제론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법 접근권 등 헌법의 기본원칙과 충돌하는 한 이탈리아 법질서에 편입될 수 없고 그 안에서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안부 피해자 측은 이 사건 역시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은 우리 헌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리인은 "일본국에 대한 재판권 행사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 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부인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는 일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소송의 재판규범으로 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일본국의 범죄행위는 나치의 고문행위 등보다 더한 인권 침해행위로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인 동시에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국제범죄이므로 국가면제에 한계를 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대리인단은 마지막으로 "피해자들은 그동안 일본에 법적 해결을 촉구하고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해줄 것을 주장해왔지만 피해자들의 소송은 대부분 각하 또는 기각 됐다"며 "최후적 구제수단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기에 형식적 판단만으로 가볍게 무시돼서는 안 된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일본국은 이날 변론기일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본국이) 어떤 반박논리가 있는지 밝히면 좋겠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지난 2016년 12월28일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21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소송 서류를 반송하면서 3년 동안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그 사이 피해자 할머니 11명 중 6명이 별세해 현재는 5명만 남았다.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첫 변론기일에 출석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사진/뉴시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