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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머리와 가슴이 고플 때 '책밥' 먹어야"
이기웅 열화당 대표 "책에도 격이 있어…진실한 기록 담아야"
입력 : 2016-05-25 오전 11:12:24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이기웅 열화당 대표 겸 출판도시문화재단 명예회장은 고집스럽다. 그가 책을 만들어 온 과정, 허허벌판이었던 파주에 출판도시를 조성해온 과정을 보면 그 고집을 알 수 있다. 예술·전통문화 전문 출판사인 열화당은 지난 45년간 800여종의 책을 만들어왔다. 1년에 20종씩, 느리지만 꼼꼼하게 책을 만들어 온 것이다.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열화당 사무실에서 두 차례 만나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줄곧 '책의 격'을 강조하며 출판에 대한 고집스런 철학을 전했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 사진/원수경 기자
 
최근 열화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혼도서관'을 통해 책에 대해 이 대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영혼도서관은 한 인물의 삶을 자서전이나 전기 형태로 영구적으로 보관하는 도서관이다. 조만간 파주 헤이리에 '안중근 기념 영혼도서관' 착공식이 열릴 예정이다. 영혼도서관에 들어가는 책들은 기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판매용은 따로 제작하지 않는 다는 방침이다. "요즘엔 장사가 안되면 책을 안냅니다. 자본주의 시장이니까 정가가 붙지 않은 책은 유통도 잘 안됩니다. 그게 싫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영혼도서관을 구상했습니다. 꼭 내고 싶은 책을 잘 만들자는 뜻입니다."
 
열화당은 영혼도서관에 놓기 위해 지난해 백범일지 복간본을 출간했다. 이 대표는 백범일지를 복간하는 과정을 염(殮)에 비유했다. "염은 씻어서 원래 상태 그대로를 복구하는 것입니다. 백범일지의 경우 당시 독립운동 현장의 절박함이 드러난 글인데 이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작업을 한 것입니다. 해방 직후 처음 출간될 당시 춘원 이광수 선생이 윤문해 다듬은 것을 다 씻어냈습니다." 백범이 쓴 글의 문격과 그의 인격이 부합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냈다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 반성의 글을 써야"
 
영혼도서관은 망자를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살아있는 자는 자서전을 쓰면서 스스로를 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반성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반성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어디까지 가려고 이렇게 속도를 내면서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성장을 멈추고 잠깐 뒤로 후퇴해 반성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빨리 왔는지, 뭐가 잘못 됐는지 봐야합니다. 앞으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기웅 대표 스스로도 기록을 많이 남기는 사람이다. 파주 출판도시 조성과정에 대한 책을 3권 낸데 이어 최근에 비망록을 또 준비 중이다. 필사도 많이 한다. 인터뷰 중에 직접 필사한 노트 대여섯권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은 원래 생각하고 말하고 기록하고 읽는 존재입니다. 남의 글도, 자기 글도 읽는거죠. 일기를 쓰고 읽으면서는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할 수 있고 남의 것을 베껴 씀으로써는 타인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다듬어 읽으려면 써야하는 것이죠. 씀으로써 자기 것으로 더 가까이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책은 진실한 기록이어야 합니다"
 
오는 7월2일이면 열화당은 창립 45주년을 맞는다. 열화당의 모태는 이 대표가 자란 강릉에 있는 99칸짜리 조선시대 고택 선교장의 열화당 건물이다. 이 건물의 시간까지 더하면 열화당의 역사는 200년이 넘는다. 오랜 역사를 쌓아온 열화당은 출판사 옆에 '책박물관'을 만들어 책의 역사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열화당 책박물관에는 약 4만권의 고서가 보관돼 있다. 현재는 옛 잡지 250여종을 모아 '잡지, 시대의 기록' 전을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전시물은 이 대표가 직접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열화당 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잡지, 시대의 기록' 전시회 모습. 사진/원수경 기자
 
이 대표는 고서를 통해서 책이 귀했을 시절을 떠올리며 활자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점점 책 만들기가 얄팍해지고 있습니다. 기계소리가 나고 쇳소리가 나고 있어요. 종이책에는 푸근함이 있습니다. 옛 책은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질이 나빴습니다. 지금은 종이는 좋은데 책의 품격은 떨어지고 있어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듯이 책에도 책격이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책이 가져야할 격, 책이 추구해야할 가치에 대해 이 대표는 '진실함'을 강조했다. "책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진실된 기록, 참된 기록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확하게 기록하려면 뛰어난 편집자가 검증하고 책의 내용에 알맞는 형태를 입혀줘야 합니다. 하지만 책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 오류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오류를 숨기려 하지 않고 겸허하게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제시한 첫번째 규책도 책의 가장 앞에 정오표를 붙이는 칸을 비워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책밥을 먹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밥을 안 먹으면 허전한 것을 느끼지만 책은 정신의 밥이기 때문에 고픈 것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머리와 가슴이 고픈 것을, 글과 책이 고픈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원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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