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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
입력 : 2026-04-07 오전 11:17:47
[뉴스토마토 허예지 기자] 인공지능(AI) 사회 전반에 스며들수록 에너지 소비도 함께 늘어납니다. 서버를 가동하는 전력, 과열된 서버를 식히는 냉각 설비, 그 전력을 충당하기 위한 발전. 온실가스는 이 연쇄의 끝에서 쌓입니다.
 
AI 서비스가 확산하는 속도만큼, 그것을 떠받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업계의 설명은 간결합니다. 구조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 시대의 흐름에 홀로 뒤처질 수 없다는 것.
 
'불가피'라는 단어는 이 국면에서 유독 자주 등장합니다. AI 개발 경쟁이 국가 경쟁력과 패권의 문제로까지 번진 지금,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충은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처럼 여겨집니다. '미래 먹거리'라는 거대한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가피하다는 말은 현상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정당화하진 못합니다. 같은 예산을 가지고도 어떤 사업자는 장기적으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술에, 어떤 사업자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방향에 투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환경 파괴가 온전히 '구조의 숙명'만은 아니며, 때로는 그 책임 주체를 특정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가 산업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류가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룰 때마다 진부하도록 반복해 온 실수입니다. 데이터센터의 입지 기준도, 재생에너지 의무 비중도, 전력효율 공시 기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급속 성장을 뼈대로, 그 부작용을 살로 가진 유기체 아닌가요. 높은 자살률과 사회적 재난, 혐오와 배타주의 등 속도가 빚어낸 부작용을 보고도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나요.
 
기후 위기 대응과 AI 산업 육성. 두 목표가 충돌한 길목에서 사회적 합의는 제 속도로 오고 있습니다. 제도적 공백을 '불가피'라는 책임의 윤곽을 흐리는 언어로 채우는 대신, 우리는 잠시 과열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봐야 합니다.
 
명분은 있으나 책임은 없습니다. 불가피라는 말이 반복될 때마다, 비용은 다음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이 역동의 유속 끝에 도달할 곳은 어디일까요.
 
(사진=참여연대)
허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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