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예지 기자]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증'을 의무화하는 정책의 정식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당초 이 제도는 3개월의 시범 운영을 거쳐 오는 23일 정식 시행이 예정돼 있는데요. 국가인권위원회의 재검토 권고, 유통 현장의 어려움 호소, 알뜰폰 사업계의 우려가 잇따르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입니다.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증 의무화 정책을) 23일에 정식 시행할지, 시범 기간을 연장할지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검토 사유를 설명했는데요. 다만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와는 무관하다"며 "(안면인증) 인식률도 시행 연기를 검토하는 이유는 아니다"라며 최근 여론에 따른 조치는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서울 시내 휴대전화 판매점 간판. (사진=뉴시스)
휴대폰 개통 시 안면인증 의무화 정책은 보이스 피싱 등 금융사기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폰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로 고안됐습니다. 신분증의 얼굴 사진과 신분증 소지자의 실제 얼굴을 실시간으로 대조해 생체인증을 진행, 이를 기존 휴대폰 개통 절차에 추가하는 건데요. 과기정통부는 이를 통해 통신서비스의 범죄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알뜰폰의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이달 13일 인권위는 과기정통부장관에게 안면인증 의무화 정책을 신중히 재검토하고,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개선 조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에 따르면, 권고를 받은 관계기관장은 90일 이내에 권고 사항의 수용 여부와 이행 계획을 통지해야 합니다.
인권위는 '전기통신사업법' 등 관계 법령에 휴대폰 개통 과정에서 추출된 생체인식정보의 수집·이용·보관·파기 등에 관한 근거를 마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또 대체 수단을 마련해 디지털 취약계층과 생체인식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는 정보 주체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국민에게 생체인식정보 관리에 대한 정보를 설명해 정책 시행 이후에도 투명한 관리와 정기적인 보안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참여연대도 지난 16일 휴대폰 안면인증 의무화에 반대하는 서명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대포폰 개통 주체의 대다수가 외국인이며, 대기업과 지자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법적 민감정보인 생체인식정보를 수집하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자 헌법상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리점과 판매점 현장에서도 애로 사항이 많다는 지적입니다. 안면인증에 활용되는 패스(PASS) 앱 사용 등 안내 절차가 늘어나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건데요. 특히 휴대폰 카메라가 파손됐거나, 휴대폰을 분실한 경우 개통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판매점에 공지가 전달이 안 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매장에 비치된 개통용 태블릿이나 여분의 핸드폰으로도 개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셀프 개통 시 기기 문제에 대해서는 "알뜰폰 셀프 개통의 경우, 본인 핸드폰이 있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며 "비대면 개통은 조금 엄격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인식 오류나 카메라 파손 등 우려는 알뜰폰 업계에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비대면 셀프 개통이 주를 이루기 때문인데요. 한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셀프 개통 과정에서 안면인식에 실패하는 경우, 가입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통신사는 대리점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지만 알뜰폰의 경우 다른 대안이 없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통신사와 대리점·판매점 등 관계 기관의 목소리를 반영해 검토를 이어갈 전망입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번 주 목요일, 금요일 중 공식적인 발표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허예지 기자 ra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