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예지 기자] 지난 9일, 트위터(소셜미디어 X의 구 명칭) 타임라인에 "인간이 인공지능(AI) 일자리를 다시 뺏어오는 콘셉트의 사이트가 생겼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에 딸린 링크의 주소는 'youraislopbores.me'. "네 AI 찌꺼기가 나를 지루하게 한다"고 중얼대는 이 사이트에 접속하자 AI 챗봇의 UI와 유사한 화면이 나타났다. 슬롭(slop)은 AI를 통해 대량으로 생성된 저품질의 디지털 콘텐츠를 일컫는 말로, 찌꺼기·오물이라는 본래 단어에서 의미를 빌려왔다.
사이트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AI들이 하듯 사람들이 남긴 프롬프트에 응답해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한다. 둘째, 응답할 때마다 1개의 크레딧이 주어진다. 셋째, 크레딧 1개 당 하나의 프롬프트를 역으로 요청할 수 있다.
메인 화면의 물음표 버튼을 누르자 "AI가 당신의 직업을 빼앗는 위협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AI의 직업을 훔쳐 인류를 구하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이건 'Grok(생성형AI의 일종)'이 아니니 친절히 대해달라. 혐오 발언과 일반적인 불친절은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새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거북이를 그려줬다", "결과를 보고 포복절도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네티즌들이 올린 결과물은 AI가 생성한 것만큼 유려하지도, 상품성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몹시 삐뚤빼뚤하거나 프롬프트 의도에 맞지 않는 경우가 더 잦았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경험은 온통 유쾌하기만 했다. 불완전한 그림조차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음을 전제하면 무한히 귀엽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상 속 스트레스를 한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채팅 너머에서 달려오는 공감이 '진짜 마음'이라는 생각에 뭉클함이 피어올랐다.
내가 속한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이트의 취지에 공감했다는 사실도 든든했다. 합의된 불완전함의 향연 위, 시대에 대한 공통의 탄식을 나누는 장이 열린 셈이었다. 연산으로 마모되지 않은 글과 그림, 그 엉성함은 "다시 인간적인 것과 연결됐다"는 감각을 줬다.
최근 이세돌 9단의 말이 함께 떠올랐다. 바둑을 주제로 새로운 에이전틱 AI 기술을 시연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AI를 이기긴 어렵겠지만, 인간만의 바둑은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필자는 그의 말을 전문가의 진단이 아닌, 한 명의 인간이 내뱉은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매끄러운 AI찌꺼기와 엉성한 손 그림을 번갈아 보며 되뇌었다. 비록 느리고 부족할지언정, AI 시대에도 인간적인 가치는 생존할 것이라고. 이는 전망이 아닌 선언이며, 의지로 투쟁하고 지켜내야 할 무언가가 아직까진 우리 손에 남아 있다고.
12일 오전 허예지 기자가 'your ai slop bores me'에 요청해 받은 이미지. (사진=your ai slop bores me 웹사이트 캡처)
허예지 기자 ra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