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미국이 무역법 제301조 조사를 개시함에 따라 우리 정부도 온종일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해당 조사 발표 시점이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법) 통과 처리 국면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졌는데요. 그간 정부는 대미투자법 통과를 전제로 '관세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대미투자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전, 미국이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하면서 정부의 관세 전략에 스텝이 꼬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굿즈 전시품을 관람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뉴시스)
정부 "불리하지 않도록 협의"…김민석은 '두 번째 방미'
청와대는 12일 공지를 통해 "미국 측은 상호관세에 대한 위법 판결 후 무역법 301조를 통해 기존 관세를 복원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 합의에서 확보한 이익 균형이 훼손되지 않고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도록 미국 측과 적극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온라인 간담회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이번에 발표한 조사 외에도 추가적인 301조 조사를 통해 여러 국가와 (관련) 협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선 현재 공식화된 조사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이번 조사 협의 과정에서도 한국의 무역 흑자가 미국 제조업에 도움이 될 부분을 통계와 논리를 통해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8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며 "한국에서 대미투자법이 통과되고 한·미 협상 관련 내용이 이행되면 관세 인상과 관련한 관보 게재 등과 같은 조치는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반응을 들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추가 보복관세 부과 대응보다는 기존 한·미 무역 합의 틀 내에서 사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오는 12일 '유엔(UN) 인공지능(AI) 허브' 유치 관련차 국제기구 협의를 위해 미국과 스위스를 방문합니다. 김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두 번째 만남도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USTR의 무역법 301조 조사와 관련한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부터 관세 타결 직전까지 조 장관과 김 장관 등 대표단의 방미를 통해 미국 측 정부 인사와 여러 차례 관련 협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조현·김정관, 현재까진 방미 계획 없어
김 총리와는 달리,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국내에서 관련 현안에 대응해 나갈 예정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조 장관의 미국 방문 계획이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안보와 연계된 철강 등 일부 사안에 대해 내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김 장관의 방미를 다시 준비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301조 조사 대응에 대해선 한·미 간 기존 관세 합의 원칙을 바탕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아울러 "한·미 간 그동안 합의한 관세 관련 원칙이 있는 만큼 다른 국가와 비교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의견 제출 등 절차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USTR이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한 직후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를 개최하고 대미투자법을 재석 242명 중 찬성 226명, 반대 8명, 기권 8명으로 의결했습니다. 해당 법은 한국과 미국의 무역 합의에 따른 총 3500억달러(약 51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추진 방식 및 재원 조성 등이 포함됐습니다. 대미 전략적 투자 지원을 위해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신규 설립, 공사 내 한·미전략투자기금도 설치될 예정입니다. 전략투자공사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내에 설립됩니다. 이를 통해 공사 출연금과 위탁 자산 한·미 전략투자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대미투자법 통과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관세 관련 합의가 이뤄진 지 약 5개월 만에 처리됐습니다. 그동안 대미투자법 관련 여러 법안이 제출됐지만 연말 필리버스터 정국 등으로 처리가 지연된 바 있습니다. 여야는 지난달 초 대미투자법 처리를 위한 특위도 구성을 끝냈으나 설 명절이 지난 이후부터 특위가 가동됐습니다. 하지만 대미투자법 처리가 지연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입법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관세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관세 협상 과정에서 낙관론을 펼치다가 미국의 기습 조치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특히 이번 조사는 실제 관세 부과 이전 단계의 압박 수단으로 평가됩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과 투자 협상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의 이번 조사는 특정 국가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조사 범위나 협의 과정에 따라 한국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