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강영관 기자] 신혼 시절에 살았던 서울 변두리 아파트 단지 중앙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새들과 곤충, 청설모 등의 보금자리였고 주민들의 안식처로도 인기가 있었다. 이제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재건축 추진 현수막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재건축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람도, 건물도 아니다. 나무다. 가림막이 세워지고 중장비가 들어서면 현장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나무가 잘려 나간다. 경제성의 논리에 따라 수십 년 아파트 주민들과 같이 호흡했던 나무는 폐기된다. 옮겨 심는 비용보다 폐기처분하는 비용이 싸다. 경제성의 논리다. 재건축 단지 안 나무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정리된다.
재건축은 도시의 숙명처럼 포장된다. 효율과 안전, 투자 같은 단어들이 정당성을 만든다. 그 논리 안에서 나무는 방해물이다. 뿌리는 기반공사에 걸리고, 그늘은 조망권을 가린다. 삶의 흔적이 깃든 오래된 느티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은 '경관 훼손 요소'라는 한 줄로 사라진다. 문제는 그 사라짐이 주민들에겐 더는 아쉬워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적 이득과 삶의 편리함 속에서 누구도 오래된 나무의 부재를 문제 삼지 않는다. 새로 들어서는 단지의 홍보 문구는 '친환경'과 '그린라이프'를 내세우지만, 그 '그린'은 대부분 인공 잔디와 잘 가꿔진 조경수다. 아파트 단지 안 자연은 '조성'되고 '배치' 된다.
새로 심어진 나무는 이미 기능을 잃은 구조물에 가깝다. 그늘 대신 인테리어로, 생명 대신 상징으로 소비된다. 이제는 새들과 곤충, 청설모와 같은 동물들은 함께하지 못한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아파트 외벽, 같은 상가 구조, 반복된 상표명. 재건축은 낡은 도시를 바꾸지만, 동시에 다양성을 말살한다. 그곳에는 지역의 시간도, 사람의 기억도 없다.
환경 문제는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 폭염일수 증가, 미세먼지 농도 상승 등등. 그러나 그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도시 온도가 오르는 이유는 숲이 줄어서고, 습도가 낮아진 이유는 나무가 베어졌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인과를 외면한 채 우리는 여전히 에어컨 숫자를 높이고 인공 그늘을 설치한다.
재건축은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가피함은 늘 경제성의 논리로만 계산된다. 공공의 공간, 생태의 질서, 주민의 기억은 비용으로 처리된다. 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기보다 '팔기' 좋은 곳으로 변해가는 이유다. 개발의 언어 속에서 나무는 저항할 권리가 없는 존재다. 아름다운 조경과 쾌적한 보행로로 포장된 홍보 영상 뒤에서 한때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던 생명이 잘려 나간다.
진짜 '명품 도시'는 고층 건물의 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늘이 있고 새가 돌아오며, 사람의 속도가 조절되는 도시가 명품이다. 나무를 지키는 일은 감성의 문제가 아니다. 재건축이 필연이라면 그 안에서 나무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공공의 역할이고 행정의 책임이다. 베어지는 나무를 외면한 채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는 없다.
강영관 기자 kw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