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단순한 공연이라기 보다는 예술품의 감상, 때론 우주적 체험에 가까운 활홀경이었다.
네 명의 '로봇들'이 쌓아 올리는 소리들은 컴퓨터 세계를 여행하다, 아우토반을 질주했고, 무중력의 우주를 거닐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소리의 증축은 청각을 부지런히 공간화, 시각화시켰다.
20여분에 한번씩 '개벽'이 일어났다. 소리가 시공하는 새로운 세계가 끝없이 창조됐다.
지난해 이맘 때쯤 3D안경을 끼고 미래인간처럼 본 ‘크라프트베르크’ 는 그렇게 ‘인생 공연’으로 남아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YMO(Yellow Magic Orchestra)’가 오리엔탈리즘적 전자음악으로 동양을 평정했다면, 대서양 인근엔 이들이 있었다. 전자음악에 효시격인 독일 밴드, ‘일렉트로닉계 비틀스’.
1970년 독일에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는 늘 첨단에 있었다.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 주문 제작한 보코더(목소리를 기계음화시키는 장비) 같은 악기로 주무른 소리는 세기를 건넜다. 일렉트로닉 뮤직이라는 장르를 대중적으로 알린 최초의 뮤지션으로도 평가된다.
전자음악에 토대가 있지만 팝, 록 영역에도 영향을 크게 미쳐왔다. U2와 데이비드 보위, 비요크, 디페쉬 모드, 뉴 오더, 마이클 잭슨, 콜드플레이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은 이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거론한 바 있다.
마크 새비지 BBC 기자는 “크라프트베르크 이전에도 일레트로닉 음악은 있었다. 1963년 BBC의 라디오포닉 워크숍에서 녹음된 델 샤논의 ‘런어웨이’나 닥터 후 테마 음악들이 그렇다”면서도 “크라프트베르크는 새로운 음악적 어휘, 최면적인 음악, 과거 유럽의 낭만을 축하하고 약동하는 미래를 전망하는 주파수 음악을 선보였다”고 평가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창립 멤버였던 플로리앙 슈나이더가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밴드를 함께 만든 랄프 후터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고인은 73회 생일을 지낸 지 며칠 안돼 암으로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 랄프 후터와 함께 크라프트베르크를 결성한 슈나이더는 2008년 탈퇴할 때까지 팀을 이끌었다. 테이프 에코, 링 모듈레이션, 컨버터, 퓨즈 등 전자악기를 탐험하며 밴드의 전신을 확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공연에서 연주되는 대표곡 ‘Autobahn’과 ‘The Model’은 모두 슈나이더로부터 나왔다. 두 곡은 영국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멤버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로봇' 안무를 시작한 것도 그가 리더로 있을 때다. 음악을 시각화하는 앨범 커버도 다수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최근 세계 음악계에선 슈나이더의 타계 후 크라프트베르크가 음악계에 새긴 의미를 되새기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1980년 결성된 영국 뉴웨이브 밴드 디페시모드의 마틴 고어는 "우리 세대의 모든 이들은 일렉트로닉 뮤직과 얽혀 있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우리들의 '대부'였다"고 했다. 두란 두란 키보디스트 닉 로즈는 ‘Autobahn’을 들었던 기억을 환기시키며 "급진적인 면에서 당대 라디오에서 흐르던 사운드들과는 달랐다"며 "혁신과 창조 면에서 내 인생 전체에 스파크를 튀겼다. 컨템프로리 음악에 관한 그의 영향은 우리 시대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평가했다.
크라프트베르크.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BOETTCHER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