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은행권이 동산담보대출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그동안 담보 채권이 부실해지더라도 법원의 경매에만 의존해 동산 담보를 처분하기 어려웠지만, 은행이 보다 쉽게 민간 시장에 동산담보를 처분할 수 있도록 은행권 기업대출 표준계약서를 손질했다. 동산담보대출은 기계설비나 재고자산, 매출채권, 지식재산권 등 동산을 담보로 진행하는 대출상품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최근 다음달 27일부터 '기업여신 개별약관'을 변경한다고 예고했다. 기존 '동산담보 근담보권 설정계약서'에서 은행이 담보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사적실행의 범위를 확대했다. 사적실행이란 은행의 자체 담보 채권 매각을 의미하며 일정 조건의 경우 은행이 동산을 사적으로 팔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국민은행의 기업여신 약관변경안에 따르면 기존에는 은행이 동산담보를 처분할 수 있는 경우를 '담보의 가치가 적어 많은 비용을 들여 경매하는 것이 불리한 경우'로 추상적이었지만, 부패나 변절이 쉬운 재산이나 보관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등의 구체적인 사유를 추가했다.
또한 '경매시 정당한 가격으로 경락되기 어려운 사정이라는 항목'을 '정당한 가격으로 처분되기 어려운 사정'으로 변경했다. 담보에 대한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금액 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수하고자 하는 매수희망자가 있는 경우도 추가했다.
이는 지난 3월 은행연합회 주관으로 담보처리의 사적실행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동산담보 표준계약서를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신한·하나·우리·농협 등 주요 은행들도 은행연합회의 의결 결과에 따라 표준계약서를 변경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 태스크포스(TF)에 따라 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약관 변경을 결정하고 변경된 공동결의 내용을 국민은행에서 먼저 금융감독원에 선승인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은행들이 동산을 담보로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기엔 동산담보 회수에 어려움이 많았다. 당국에 따르면 동산담보회수율은 평균 16%으로 부동산 72%에 비해 현저히 밑돈다. 특히, 동산 담보 처리는 채무자가 처분가격에 불만이 많아 민원 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 법원 경매에 의존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강경과에 따른 부식·고장 등의 이유로 매각시점에 와서는 제 값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시중은행은 2015년 6월경 중소기업의 동산담보 부실리스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원 경매가 7회 유찰돼 1년 이상 설비기기를 장기 보관했다. 보관비용만 1300만원을 소모하고 기계마저도 오랜 시간 미가동으로 고장이나 온전한 담보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5대 주요은행 동산담보대출금 추이도 2013년 말 1397억원, 2015년 말 1478억원으로 늘다가 이듬해부터 줄어 2017년 말엔 816억원, 2018년 말에는 999억원으로 성장세가 정체됐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동산금융 활성화를 위해 각종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특히, 동산담보가 전적으로 법원을 통해 매각돼 가치 회수가 어렵다는 은행권의 요구를 반영해 은행 담보 처분 여력을 확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동산 담보 표준계약서 개정에 따라 은행의 부실담보 매각에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원 경매를 통해 담보를 매각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사이 동산 가치가 급락한다"며 "표준계약서가 개정되면서 은행이 보다 쉽고 빠르게 동산을 처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 은행이 부실담보 처리에 대한 자율성이 커졌을 뿐 매각시장이 달라진 것이 아니기에 즉각적인 담보대출 시장 확대를 바라기엔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 처분 절차만 간소화되는 것이지, 기계거래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의존하는 시장 분위기를 뒤엎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시흥시 한국기계거래소를 방문해 동산담보 관리시스템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