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한반도에 평화에 바람이 부는 가운데 여전한 대북제재를 뚫고 서울-평양 교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포츠 외교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됐다. 31일 서울연구원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하의 서울시 남북 문화·체육 교류 전략과 방안’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는 북한의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모두 10번에 걸쳐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그 심각성에 대한 조치로 금융제재, 회원국의 무기와 물자 등 공급·판매·이전 금지, 화물검사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총 10번에 걸친 대북제재 결의안 가운데 6개가 2016년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에 채택됐으며, 새로운 결의안이 기존 결의안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보완되면서 제재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의 결의안들은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군사적 조치’로 평가받고 있으며, 북한의 핵 위력과 미사일 발사능력에 따라 지속적으로 강화됐다.
그렇다고 남북교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작년 2월과 3월에 열린 평창동계올림픽과 평창동계패럴림픽 참가를 위해 539명의 북한 대표단과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태권도 시범단 등이 한국에 입국했다. 또 작년 3월31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한국 대표단 191명 가량이 평양을 방문해 두 차례 공연을 펼쳤다. 모두 크고 작은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발생했으나 한국 정부의 유엔 안보리 면제 승인과 미국과의 협의를 거친 예외 인정, 북한과의 상의를 거친 요구사항 최소화로 이를 비켜갔다.
이에 서울시가 수년 전부터 추진하는 서울-평양 도시협력방안 중에서도 스포츠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대동강 수질 개선, 산림자원 공동이용, 보건의료 협력 등 도시협력방안 3대 분야 10대 사업울 준비했다. 특히, 문화·체육분야 교류는 대북제재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추진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판단 아래 우선과제로 분류됐다. △경평축구대회 개최 △제100회 전국체전 북한팀 참가 △서울-평양 교향악단 합동공연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개최 등이다.
경평축구는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총 7회 20차례 경기를 개최했던 경평대항 축구전을 재개한다는 의미다. 경평축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전에도 남북을 대표하는 도시 간의 행사였다. 전국체전의 경우도 1938년 일제에 의해 조선체육회가 강제로 해산되기 전까지 18년간 남북 모든 체육인들의 축제였다. 2019년은 전국체전 100회로 의미가 있다. 2032년 하계올림픽 역시 국내 후보도시는 서울로 확정됐으며, 적극적인 유치전으로 서울-평양 공동개최를 노리고 있다.
특히 체육 분야 교류가 중시되는 이유는 ‘스포츠 외교’(Sports Diplomacy)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외교가 남·북한과 주변 국가 사이의 주요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갈등국면 해소와 화해 분위기 조성, 국가 간 대화 채널 구축, 우호적인 국내 여론 조성, 국가 브랜드 홍보와 국가 이미지 제고, 경제적 파급 효과 등을 중·장기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스포츠 외교사례가 냉전시기 미국과 중국 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된 1971년 ‘핑퐁외교’다. 적대관계였던 미중 양국은 탁구 경기를 매개로 대화 분위기를 조성했고, 1979년 미중수교의 공을 따질 때 탁구시합을 빼놓을 수 없다. 남북 역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분단 이후 처음으로 단일팀을 만들어 참가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등에 동시 입장해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과 작년 평창동계올림픽 역시 10년간 중단된 남북 고위층 대화 채널 복원에 큰 역할을 했다.
스포츠 외교가 가지고 있는 갈등국면 해소와 화해분위기 조성이라는 파급효과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와도 부합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북한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평화·외교·정치적인 방법으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고,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 이를 위한 긴장 완화 조치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포괄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스포츠 외교를 수행할 수 있다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예외사항으로 인정받고 추진할 수 있다.
연구진은 서울시 단독 추진으로는 스포츠 외교가 이뤄질 수 없는 만큼 다른 지자체와 정부, 국제사회의 협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이뤄졌던 지자체 차원의 남북교류협력은 때로는 중앙정부 대북정책의 보조 역할을, 때로는 대체 혹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상호주의에 기반해 남북 모두의 이익과 필요성에 부합하는 사업 추진은 과거 부정적 경험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대원칙이다.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스포츠 외교를 단독으로 추진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보건의료분야나 도시인프라 개선 사업과 패키지로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의 승인 요청, 미국과의 협의 등을 위해 문체부뿐만 아니라 외교부, 통일부 등 관련 국가기관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 시급하다. 인도주의적 지원 등과 연계하여 추진한다고 해도 절차가 매우 복잡해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른 지자체 간 협의 없이 각자 추진할 경우 결국에는 북한의 선택을 받아내야 하는 내부 경쟁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고, 미국 등 주요 국가와 협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정부 등과 다자협력관계를 구축해야한다”며 “서울시의 스포츠 외교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만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예외사항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32년 하계올림픽 국내유치도시 선정을 위한 대한체육회 대의원 총회에서 서울-평양 공동개최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