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30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일하는 저소득층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기업에 지원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정계층을 겨냥한 '부자증세' 보다는 전 계층에 세금을 깎아주면서 전방위적으로 '경제살리기'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다만 문재인정부 2년차인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정부의 조세정책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평과세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작년과 같은 초고소득자 소득세 최고세율 및 대기업 최고 과표구간 법인세율 인상 등의 굵직한 부자증세가 없이 근로장려금 확대, 혁신성장 기업 지원 등에 세제 혜택을 늘리면서 세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내년에만 세수가 올해보다 3조2000억원 급감하며, 향후 5년간 올해 대비 누적으로 총 12조6018억원의 세금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이명박정부의 '부자감세' 이후 10년 만의 감세 전환이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는 등 5년간 21조3000억원 규모의 감세안을 내놨다.
올해 부자증세는 '부동산'에만 초점을 맞췄다. 종합부동산세 인상과 주택임대소득 과세 적정화가 그 예로 올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부담은 7882억원에 그친다. 작년 이들의 세부담이 6조2683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2.5% 수준에 그치는 '찔끔' 증세다.
포괄적 증세 논의를 포함해 조세·재정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권고한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도 빠졌다. 재정특위는 금융소득의 상위계층 쏠림 현상, 금융소득자와 비금융소득자의 조세형평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권고한 방안이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을 현행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제외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자리·소득개선 지체 등으로 체감경기와 민생여건이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부자증세 기조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보다는 기업들에게도 투자할 여건을 만들어 세제측면에서 최대한 많은 층을 아울러 뒷받침 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기업이 혁신성장을 위해 투자할 수 있도록 한 방안이 많이 담겼다. 대기업이 신성장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한 시설을 지을 때 매출액 대비 R&D(연구개발) 비용이 2%를 넘으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이다. 또 취득한 혁신성장 시설 투자 자산에는 가속상각(설비투자금을 일정기간 나눠서 비용으로 회계 처리하는 감가상각의 한 방식)을 적용해 비용 부담을 덜어준다. 이렇게되면 자산 도입 초기 납부해야 할 세금을 뒤로 미뤄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이자율이 2.5~3.0%라면 기업이 300억~400억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세금을 더 깎아주는 기조도 유지했다. 중소·중견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적용받는 세액공제도 2021년 말까지 3년 연장된다. 전환인원 1명당 중소기업, 중견기업이 각각 1000만원, 700만원을 세액공제 받는다. 올해 일몰이 도래하는 각종 지역 특구에 대한 세제지원은 2021년 말까지 연장한다. 지역 특구 법인·소득세 감면 한도는 고용 인원이 많은 기업일수록 커진다.
정부는 올해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저소득층 지원에 특히 신경을 썼다. 최근 내놨던 '저소득층 일자리 대책'과 당정협의에서 밝힌대로 근로장려금(EITC)·자녀장려금(CTC)의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크게 확대했다. 작년 166만 가구에 1조2000억원 가량 지급됐던 EITC는 내년에 334만 가구에 3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조6000억원이 더 늘어난다. 자녀양육 부담을 덜기 위한 CTC는 지급 대상을 생계급여 수급자까지 확대하고, 지원액도 자녀 1인당 30만~50만원에서 50만~7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EITC와 CTC 확대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는 각각 2조6200억원과 3400억원 등 총 3조원에 육박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서민을 위한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지원 확대는 전향적 정책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세수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증세방안을 적극 담았어야 한다"며 "정부가 이번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을 도모한다며 5년간 법인세를 총 1조8000억원 감세하는데 투자 능력을 지닌 대기업에게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 요구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소득장려세제, 역외소득과세와 임대소득 과세 강화한 부분은 잘한 부분"이라며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하청)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초과이윤 공유세제(협력이익공유촉진형 세제)는 꼭 들어갔어야 하는데 빠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정부의 공평과세 조세원칙이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미 충분한 재원을 확보한 대기업을 위해 연구개발 지원 형태로 세제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걷는 식의 조세지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김하늬 기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