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로부터 위정자들의 큰 통치덕목으로 치수(治水)를 얘기했다. 옛 군주들은 저수지 관리만 잘하고 홍수나 가뭄 관리만 잘해도 중간 이상은 갔다. 치수의 중요성은 농경시대는 물론 산업시대를 지나 4차산업을 얘기하는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달 1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첫 현장시장실 장소로 선택한 곳은 서초구 방배동 하수암거 공사현장이었다. 방배동 일대는 2010~2011년 국지성 집중호우로 1530여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서울시가 발굴한 침수취약지역 34곳 중 하나다. 도로를 점유한 채 진행되는 하수암거 공사가 계속되면서 차량 혼잡으로 인한 주민 불편도 만만치 않지만, 오히려 100명 가까운 주민들이 현장시장실을 찾아 박 시장에게 차량 혼잡을 감수할테니 공사속도를 높여 올해 안에 끝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와 강남역 물난리는 많은 서울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해에는 양천구 신월동 일대에 폭우로 6000여세대가 침수 피해를 겪기도 했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을 외치며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오세훈 전 시장은 우면산 산사태와 강남역 물난리 등으로 ‘치수’에 큰 허점을 보였고 이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거쳐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을 대신해 취임한 박 시장은 다행히 우면산 산사태와 강남역 물난리를 전환점으로 삼았다. 매년 4500억~5000억원을 투입해 전체 34곳 침수취약지역에 대한 하수암거 정비, 빗물펌프장 설치 등을 진행했다. 비교적 큰 예산이 투입한 덕분에 사업 속도를 높여 지난해까지 15곳이 공사를 마쳤고, 올해 6곳이 진행 중이며, 2019년 우기 전까지 나머지 13곳도 완료 예정이다. 사업을 마치면 이들 지역은 시간당 95mm의 비를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서울과 인접한 인천의 침수 대책은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이다. 인천에는 최근 몇 년간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적었지만, 2010년 태풍 곤파스, 2011년 태풍 볼라벤, 그리고 수차례의 국지성 집중호우로 2010~2011년에만 28개 지역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재정이 열악한 인천시는 수해 예방 예산으로 매년 100억~150억원을 투입할 뿐이다. 인구 차이, 재정자립도 차이 등을 고려하더라도 인구 300만, 국내 제3의 도시치곤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다.
현재 인천시의 과제에서 치수가 1순위는 아닐테다. 아시안게임, 도시개발 등을 진행하며 재정난을 떠안게 된 인천시는 내년 재정위기단체에서 벗어나 재정정상단체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재정 다이어트가 한창이다. 기존 사업들도 ‘마른 수건’을 짜내는 판에 수십~수백억원 규모의 대형 치수공사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기후 온난화 등으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늘어나면서 이를 견디려면 처리용량을 확보하기 위해 갈수록 큰 예산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지난달 23일 서울과 인천 등지에 시간당 100mm 안팎의 국지성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인천에선 90대 노인 1명이 사망하고 고속도로 일부와 전철역이 물에 잠겼으며 2345채가 침수되는 피해를 겪었다. 반면 서울은 비슷한 호우에도 20여건의 주거지 침수 피해 신고만 있었을 뿐 큰 사고는 없었다.
인천시는 이번 침수 피해에 대해 ‘자연재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의 2011년 우면산 산사태에 대한 당시 결론도 자연재해였다. 설사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위정자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재해 앞에 선 우리에게 대비하고 또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만든 말이 ‘치수’다. 결국 지금도 치수는 위정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박용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