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경유착의 후유증으로 해체 요구에 직면하면서 경제단체의 지각변동이 감지된다. 전경련이 비난 여론을 의식, 재계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경영자총협회로 선발대의 바통이 옮겨졌다. 전경련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쇄신을 통해 기존의 재벌 옹호 일변도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인다.
시발점은 박근혜정부를 종식시킨 최순실 게이트였다. 전경련이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재벌개혁이 재차 부상했고,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이 탈퇴하는 등 600여개 회원사 중 100여곳이 전경련과의 관계를 끊었다. '재계의 입'으로 불리며 주요 시점마다 재벌 논리를 앞장서서 대변하던 위상도 사라졌다.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 출범 한 달을 비교하면, 과거 전경련은 10여건의 정책 보도자료와 발표문, 시론을 쏟아내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단 한건도 없었다.
지난 25일 정부의 일자리정책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한 경총의 행보는 상징적이다. 경제단체 중 처음으로 정부에 딴죽을 걸면서 전경련을 대신해 재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비정규직 문제를 챙기고, SK와 LG 등이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이자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정규직화는 기업 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여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경총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청와대, 여당의 경고를 받고 이틀 만에 "정부 정책에 반대할 의도가 아니었다"며 해명하며, 예정됐던 '비정규직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책의 출간을 보류하는 등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민주정부를 자임한 새 정부에 '재계 의견을 틀어막은 불통정부'라는 인상을 심는 데는 성공했다는 자평이다. 이른바 '간 보기'라는 비아냥은 샀으나 과거 전경련의 역할은 완벽히 대체했다.
지각변동은 전경련 유관 기관인 한경연을 통해서도 진행 중이다. 한경연은 그간 '재벌의 입맛에 맞는 시장경제 논리만 만든다'는 지적을 들었다. '규제완화=투자 및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활성화 등식을 내세워 정부의 규제 완화를 압박했다. 최근 들어 기존의 방식은 찾을 수 없다. 한경연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한경연이 그간 재계의 입장만 반영하면서 젊은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노선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며 "전경련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오히려 한경연에 대한 간섭이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권태신 한경연 원장이 전경련 부회장을 겸하며 전경련 쇄신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주목된다. 권 부회장은 허창수 회장에게 조직 쇄신에 대한 권한을 일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이 쇄신안을 발표하며 추진한 인원 감축과 조직개편은 사실상 기존 대관조직 성격의 전경련을 한경연 중심의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 한경연이 낸 자료와 입장을 통해서도 엿보인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한경연은 "정부는 과도한 급변·급진성을 상쇄하도록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도모하는 기조를 지향해야 한다"며 법인세 인상, 증여세법, 기업 내부거래 규제 등에 반대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기본소득제의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설계방식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어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보다 합리적 태도로 돌아섰다는 평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사진 왼쪽)와 전국경제인연합회(사진 오른쪽) 전경,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