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촛불집회에서 '국정농단 책임자 처벌하자', '새누리당을 해체하라'고 외치다가 선거사범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 따라 과거보다 유난히 이른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예년보다 선거법 위반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에서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는 비상정국에서는 60일 안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는 곧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한 그 날부터 선거일이 시작돼 유권자들의 의사 표현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선 전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은 당내 경선과 조기 대선에 대한 기대에만 몰두해 선거법 개정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실정이다.
13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성명을 내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유권자의 말할 자유를 제한하고 후보자 검증 가로막는 현행 선거법을 여전히 방치하고 있다"며 "유권자의 입을 막는 살벌한 선거법 개정하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8일 참여연대는 같은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조기 대선 아래에서 현행 선거법의 문제를 짚었다. 이에 따르면, 헌재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즉시 선거일로 간주해 선거법의 규제가 시작된다. 매주 촛불집회에 분출됐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정치인들의 발언, 평화로운 집회와 행렬 등이 선거법에 근거해 제한될 처지다.
참여연대가 촛불집회에서 자주 등장하거나 대선 국면에서 나타날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적 행위 가운데 선거법 위반 사례로 꼽은 것은 보면, 우선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얼굴 사진들을 나열한 게시판에 박근혜 국정농단과 관련된 후보를 골라 스티커를 붙이는 길거리 이벤트를 하는 것은 선거법 제90조 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에 위반된다.
또 탄핵에 반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는 후보를 향해 '표 얻을 생각말라, 규탄한다'는 현수막을 걸거나 '탄핵 반대한 새누리당, 국민의 힘을 보여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것도 선거법 90조에 어긋난다. 자유 발언을 하려고 무대에 올라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책임자들, 선거로 심판하자"고 외쳐도 91조 확성 장치와 자동차 등의 사용 제한과 101조 타 연설회 등의 금지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현재 여권의 대선주자로 꼽히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실제로 대선에 출마할 경우, 황 권한대행과 박 대통령 얼굴을 합성해 '박근혜 아바타'라는 내용의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도 110조 후보자 비방에 해당돼 처벌받게 된다.
특히 현행 선거법 중 90조, 93조, 251조 등은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후보자 이름이나 사진,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의 현수막과 표시물을 금지하는 90조,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 등을 배부하거나 게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93조, '비방'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의사표현과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까지 막는 251조 등 대표적인 독소조항은 이번 대선 전에 개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요구와 달리 선거법 개정의 열쇠를 쥔 국회는 무관심한 분위기다. 장소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시민단체가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거나 선거법 관련 질의서를 보내거나 할 수 있지만 대선 전까지 국회가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요구는 단지 이번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된 주장이지만, 유권자의 자유에 관한 내용은 의원들이 자신의 이익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국회는 관심 밖"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제15차 범국민행동의날' 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조기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