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를 던진다. 젠장. 친구 녀석의 빌딩숲에 빠졌다.
다시 주사위를 던진다. 이번엔 호텔숲이다. 더 이상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다. 호텔숲의 주인은 행복에 겨워있다. 그놈이 잘한 거라곤 운 좋게 서울을 획득한 것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주사위 운을 탓할 수밖에. 파산을 선언하고 전 재산을 은행에 몰수당한다.
사진/바람아시아
부루마불. 원래 명칭은 푸른 구슬이라는 뜻의 블루마블, 지구를 상징한다. 1980년대 보드게임으로 시작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은 재산증식형 게임이다. 룰은 간단하다. 플레이어들은 주사위를 굴려 도착한 곳에 주권국의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다. 내가 산 땅에 다른 플레이어가 들어오면 땅의 가치만큼 돈을 지급받는다. 처음 동일하게 지급 받는 것 외에 돈을 획득하는 방법은 한 바퀴를 완주하면 얻는 보너스와 땅에서 나오는 수입이 전부다. 언뜻 보면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 게임이지만 사실은 독점 자본주의의 논리를 담고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같은 색깔의 땅을 사들여야 한다. 같은 색깔의 땅을 획득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만큼 많은 건물을 지어야 한다. 즉, 많은 땅을 독점하고 강화할수록 게임에서 승리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땅을 얻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노동은 필요 없다. 주어진 돈을 활용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거래를 할 뿐이다. 거래에서도 많은 땅을 독점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주사위를 굴리는 운이다. 운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은 차라리 일정 부분 참여가 제한되는 무인도에 빠지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부루마불이 지구의 축소판이라면 플레이어는 세계의 구성원과 다름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운을 바탕으로 많은 땅을 독점하고 수익추구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들을 파산시켜야 한다. 그것이 부루마불이 현실 세계에 전달하는 교훈이다. 보드게임과 현실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부루마불의 모습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지대 추구 행위와 닮아있다.
사진/바람아시아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를 통해 불평등이 부유층의 지대 추구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지대 추구란 “부를 창출한 대가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창출된 부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차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부자가 되는 비결은 두 가지로 나뉜다. 부를 창출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를 빼앗아 가지는 것. 이 중 스티글리츠는 미국 상위 계층 대부분이 후자에 속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상위 계층의 지대 추구를 볼 수 있다.
모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억 할 것이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비롯된 전 세계적 금융위기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에서도 대형 금융회사의 임직원들은 고임금, 고성과급으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정작 책임에서 빗겨나 있었고 평범한 납세자들의 돈이 대형 금융회사로 들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개발했지만, 상품을 자유 시장 경쟁에 내놓지 않았다. 그들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운영 체제와 한데 묶어 무상으로 내놓음으로써 타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단기적인 이윤 극대화를 거부하고 독점의 유지를 위해 펼친 전략이다. 그들은 시장 경쟁을 저해하면서 이룬 독점을 통해 지금까지 막대한 양의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의‘2015년 대기업 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보면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집단의 내부거래 비중은 9%였지만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도 늘어나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기업은 내부거래 비중이 34.6%까지 올라갔다. 내부거래란 계열사 간에 물건을 사주거나 인력을 지원하는 등 한 그룹 내 거래행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자유로운 경쟁을 저해하고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도모하는 데 있다. 기업의 총수들이 축적된 재산을 바탕으로 영속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 없다.
이들이 누리는 부가 실질적 노동과 노력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들은 부루마불 전체의 돈을 증가 시켰는가? 일정 부분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부의 대부분은 다른 플레이어들, 특히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돈을 효과적으로 착취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부루마불의 끝을 알고 있다. 승자보다 패자가 많은 게임. 그렇다면 게임의 룰을 바꿀 수는 없을까.
부루마불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한 바퀴를 완주하면 얻는 보너스’에 주목해보자. 이것은 일종의 ‘비노동소득’이다.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소득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위계층들이 얻는 ‘지대’와 비슷하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부루마불에서 유일하게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상상해 보라,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주어지는 돈이 기존의 100만원에서 1000만원, 아니 1억으로 늘어난다면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 소수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한 채로 계속될 수 있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기업가인 피터반스는 ‘기본소득’이 가장 확실한 ‘비노동소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알래스카 모델에 집중한다. 알래스카는 석유 등 천연자원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1/n로 균등하게 배당하는 영구기금 배당금(Permanent Fund Dividend)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알래스카 모델의 핵심을 석유가 아닌 공유재에서 나오는 배당으로 보고 공유재를 통해 발생하는 수입을 시민배당의 개념으로 나눠주자고 제안한다. (피터반스의 시민배당은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시혜적 성격에서 벗어나 권리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석유가 없는 나라에서도 토지, 천연자원 등의 공유재를 통해 얼마든지 시민배당을 실천할 수 있다. 그는 시민배당을 통해 모든 시민들에게 ‘비노동소득’을 준다면 양극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비노동소득’이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게임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끊임없이 흘러들어감으로써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상위계층보다 중하위계층이 임금노동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중하위계층에 전적으로 불리하다. 누군가는 ‘비노동소득’을 주는 대신 ‘노동소득’을 올려주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은 진보하고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노동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모두가 더 정의로운 방법으로 ‘비노동소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더욱 공평하고 정의로운 시장 시스템의 탄생을 위해 ‘기본소득’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공평한 시스템을 위한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하지만 고민해볼 만한 대안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들은 혁명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복지, 노동, 결론적으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게임을 계속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중 어느 쪽이 게임을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까.
새로운 부루마불을 꿈꾼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