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증여를 법률 자문한 A로펌이 해외에 SPC(특수목적법인)를 만들어 지분을 우회 증여하는 데 깊게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 총괄회장의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 조재빈)는 5일 "신 회장에게 지시를 받은 그룹 정책본부가 해외 SPC를 만들어 (지분을) 넘기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A로펌이 실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005년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를 장녀 신영자 (74·구속 기소)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 씨(56), 딸 유미 씨(33)에게 차명으로 불법 이전하면서 모두 6000억원의 양도소득세와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통해 홍콩·싱가포르·미국 등 최소 4개국 이상에 SPC를 만든 뒤 일본 홀딩스 주식을 거래하고 이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신 이사장 등에게 지분을 증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이 증여세를 내지 않도록 방법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고, 그룹 정책본부가 SPC를 통한 거래 아이디어를 냈으며, 그 실무를 A로펌이 맡은 것으로 검찰 조사 드러났다.
검찰은 최근 롯데그룹 정책본부 등을 압수수색했으나 이에 대한 물증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롯데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당시 A로펌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A로펌으로부터 지난 1일 자료를 임의제출 받았다.
정책본부는 물론 롯데그룹이 따로 관련자료를 보관하지 않고 A로펌에 있는 자료만 남겨둔 것은 변호사의 비밀준수의무를 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변호사법 26조는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며 비밀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로펌 역시 같은 의무를 진다. 형사소송법상으로도 변호사나 로펌은 의뢰 사건의 자료 요구를 거부할 수 있지만 공익상 문제는 예외로 돼 있다.
검찰 역시 A로펌에게 이번 사건에 관한 자료를 임의제출 받기 위해 탈세 사건에 관한 자료임을 설명하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첨부해 제시한 뒤 관련 자료를 넘겨받았다.
검찰은 롯데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제와 어제 당시 주무를 맡은 A로펌 소속 Y변호사를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했으며, Y 변호사 역시 대체적 구조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SPC 만든 것 자체는 롯데에서 했고, A로펌은 실무 업무를 도와준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A로펌이나 Y변호사가 탈세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A로펌에서 증거를 인멸한 정황은 없었으며 조사에 충분히 협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탈세규모가 6000억원으로 단일 기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데다가 해외 SPC를 이용한 탈세 과정이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라는 점, 수회에 걸쳐 탈세를 하면서도 법망을 피해온 점 등을 감안해보면, Y변호사 등 A로펌 관계자들의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는 상태다.
한편, 검찰은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2) 전 부회장도 신 총괄회장과 같은 수법으로 탈세를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