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우리 헌법 11조에 명시한 평등권 조항이다. 평등권은 인권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기본권이다. 세계의 역사는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이 그랬고, 1960년대 미국의 흑인해방운동 또한 그랬다. 2010년 튀니지의 민중혁명(재스민 혁명)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평등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평등의 사전적 반대말은 차별 또는 불평등이지만 사회적 대치 개념은 특권이다. 이 특권 또는 특권 의식은 학연, 혈연, 성별 등으로 분열했다가 기득권을 형성한다. 특권과 기득권이 사회에 만연하면 그 사회는 병들고, 국가조직으로 침투하면 그 국가는 망하기 마련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 대부분이 평등권의 침해다. 그 침해가 가장 평등이 실현되어야 할 대학과 정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음은 심히 유감이다.
서울의 모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출신 대학별로 등급을 매겨 입학 전형에 반영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대학 카스트제도’라는 맹비판을 들으면서도 해당 학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때문에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이라는 웃지 못할 법안도 추진 중이다.
법무부 등 정부부처 역시 각 언론사별로 등급을 매겨 유력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취재에 적극 응하라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군사정권 당시 언론 통제와 다를 게 없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교육부는 신임 여교사를 도서벽지 학교에 발령 내지 않겠다는 방안을 대책으로 내놨다. 환자 몸에 생긴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암을 가진 환자를 죽이는 처사다. 명백한 성차별이며 직업수행 자유의 침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학여행을 당분간 전면 금지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이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 중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청와대가 내린 처방도 여성 아닌 남성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박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중에 드러난 일이다. 당시 행사 도우미나 통역은 현지 유학생들이 맡았는데 통역담당 모집에 ‘용모 단정, 예쁜 분’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묻혀버릴 뻔한 이 일은 당시 통역 도우미로 순방행사에 참석했던 현지 유학생의 당당한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런 망신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청와대나 관계 부처는 이후 어떤 해명이나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로스쿨 제도는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해서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 저변에는 높은 비용으로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의 재판권을 평등하게 보장하자는 취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로스쿨 스스로가 권력기관이 돼 차별을 자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정부 부처 가운데 평등의 이념이 가장 엄히 실현되어야 하는 부처는 법무부와 교육부다. 이런 부처가 차별적 정책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앞서 조장하고 있음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에 대해서는 굳이 말 하지 않겠다.
국격은 결코 화려한 정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쪽만 높아져서도 안 된다. 언젠가부터 국격을 높이자는 말이 나왔지만 전혀 높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평등권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최기철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