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주식 논란’이 뇌물혐의로 번지면서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애초 암초였던 공소시효 만료 문제도 법 개정과 함께 15년으로 연장된 것으로 확인돼 수사에 활기가 더해진 분위기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게임업체인 넥슨은 1994년 설립돼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눈부신 성장을 했다. 넥슨이 성장하던 지난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는 여러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때다. 자산과 인맥이 없던 당시 일부 벤처기업들은 자신들이 가진 비상장 주식을 로비 자산으로 활용했다. 결국 이번 사건 역시 당시의 잘못된 기업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그 전말을 짚어봤다.(편집자주)
‘벤처 붐’이 일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일부 벤처기업들은 자기 업체의 비상장 주식을 뇌물로 공무원들에게 뿌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이 없었던 벤처기업들은 정부 지원금은 물론 공무원 인맥 형성이 절실했다. 당시 벤처기업들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할 자산은 자신들이 가진 비상장 주식이 유일했다. 이 때의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당장 돈은 되지는 않지만 ‘장래에 대한 투자’ 개념으로 비상장주식을 선호하는 공무원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보험'과 '투자'라는 요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장 주식 뇌물 로비’가 성행하면서 결국 꼬리가 잡혔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사원이 2001년 4월 무더기로 적발한 ‘벤처기업 비상장 주식 뇌물 로비’ 사건이다. 감사원은 그해 3~4월 15개 기관을 집중 감사한 결과 각종 편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벤처기업의 미공개 주식을 매입해 거액의 매매차익을 챙긴 공직자와 국책은행 직원 등 66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죄질이 나쁜 6명은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의뢰했고 28명은 문책 등 징계를, 나머지 간접 연루자 32명은 소속 기관에 비위사실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부 벤처기업들의 ‘비상장 주식 뇌물 로비’는 계속됐다.
오길록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도 벤처기업으로부터 비상장 주식을 싼값에 사들여 2억6000여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그는 ETRI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2003년 3월 산 소프트 개발 벤처기업인 J사로부터 장외에서 주당 3만 원을 호가하던 비상장 주식 5000주를 주당 506원에 받는 등 1999∼2000년 연구원과 거래관계가 있는 5개 업체의 주식을 당시 시세보다 2억6000만 원 싼 값에 산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오 전 원장은 주식 주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익을 보지 못해 뇌물수수죄에 해당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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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진 진경준(49·사법연수원 21기) 검사장의 넥슨 비상장 주식 매입 논란이 뇌물의혹으로 번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주(49) 회장은 게임업체인 넥슨을 1994년 창립해 잇달아 히트를 치면서 급부상했다. 2000년 말에는 대한투자신탁이 넥슨 주식 30만주 중 5%인 1만5000주에 300억을 출자하겠다고 제안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주당 167만원 수준, 액면분할시 16만7000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2002년에 넥슨재팬을, 2005년에 넥슨아메리카를 설립한 김 회장은 같은 해 6월 전 넥슨USA 법인장 이모씨가 보유하고 있던 넥슨 주식 3만주를 진 검사장과 김상헌 당시 LG부사장(현 NHN대표), 박성준 전 NXC 감사 등 3명에게 각 1만주씩 팔았다. 이 중 진 검사장은 넥슨이 무담보·무이자로 빌려준 자금 4억2500만원으로 주식을 매입한 뒤 본인 돈과 장모 돈을 합쳐 그해 되갚았다.
진 검사장의 ‘비상장 주식 뇌물’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심우정)는 넥슨이 대준 주식 매입자금 4억2500만원 또는 주식 자체의 가치, 시세가 보다 싸게 매입한 차액만큼의 이득을 뇌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 검사장과 넥슨은 진 검사장이 주식을 취득하게 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두 사람은 20년지기 친구인 데다가 당시 진 검사장은 법무국 검찰국 검사로, 뇌물을 줄 정도의 고위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진 검사장 뿐만 아니라 김 대표와 박 전 감사가 동일한 조건에서 주식을 매입했다는 것도 뇌물 의혹을 부인하는 근거로 쓰인다.
김 회장의 아버지인 김교창(79·고시 사법과 10회) 변호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 당시엔 진 검사가 '새끼검사'인데 무슨 힘이 있다고 그 덕을 보자고 주식을 줬겠느냐”며 “(만약 넥슨의 방패막이가 필요해 주식을 줬더라면) 더 힘 센 사람에게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벤처업계의 로비관행이나 진 검사장이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던 배경 등을 따져보면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게다가 진 검사장은 주식매입과 차액을 얻은 사실이 문제되자 “개인 돈으로 샀다”고 했다가 “개인 돈과 장모 돈을 합쳐 샀다”고 말을 바꿨고, 결국 넥슨이 “단기 대여해줬다가 바로 되돌려 받았다”고 밝히면서 거짓말한 것이 탄로 났다.
주식 매입 자금을 마련한 방법에 비춰봐도 진 검사장이 공무원인 검사로서 당시 ‘뇌물 시비’를 이미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김 대표나 박 전 감사가 같은 조건으로 주식을 매입하게 해준 것도 진 검사장에 대한 뇌물 의혹을 희석하기 위한 '물타기'가 아니었느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비상장 기업의 경우 사업상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을 주주로 ‘모시는’ 것이 일부 관행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사업이란 기본적으로 이익을 남기기 위해 주고받는 것이 본질”이라며 “회사 직원들이나 일반 투자자들에게 가야 할 기회를 공무원 등에게 줬다면 당연히 반대급부를 원하는 것이 아니냐”고 일축했다.
검찰은 최근 진 검사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할 만큼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김 회장 역시 뇌물 또는 배임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 김 대표나 박 전 검사 역시 최소한 의혹 규명 차원에서 참고인 소환조사가 검토될 수 있다. 다만 김 회장의 경우 배임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가 문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법원은 오 전 ETRI 원장 사건에서 "특별한 청탁이 없었다 해도 공무원이 금품이나 이익을 제공받아 직무집행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면 직무와 관련된 이익을 제공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